조의준 워싱턴 특파원
조의준 워싱턴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 캠페인 전 자신의 철학을 담아 펴낸 책 '불구가 된 미국'엔 한국이란 단어가 5번 등장한다. 그는 책에서 "주한 미군은 매일 위험을 안고 산다. 그런데 우리는 한국에서 무엇을 받았나"라고 했다.

일본과 독일도 5번씩 거론하며 "이 나라들로부터 일자리를 되찾아야 한다"고 썼다. 그는 책에서 중국을 60번 언급하며 경제·군사 등 모든 분야의 경쟁자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오랫동안 이 싸움에서 패배했다"고 적었다.

그러나 취임 후 트럼프 대통령의 화살은 중국이 아닌 한국으로 향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2일(현지 시각) 여야 상·하원 의원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경제 문제를 논의한 자리가 대표적이다. 백악관이 공개한 이날 회의록에서 중국이 25번 언급될 때, 한국은 21번, 일본은 4번, 독일은 1번 언급됐다.

그는 이날 과잉생산과 덤핑의 원흉으로 중국을 지목하며 두루뭉술하게 언급한 반면, 한국에 대해선 한·미 FTA와 자동차, 철강, TV 등 구체적 사안을 찍어가며 "일자리를 훔쳐갔다"는 취지로 말했다. 일본과 독일에 대해선 자동차 문제만 거론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사실상 '시범 케이스'로 삼고 손볼 준비를 하고 있다는 의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우리는 한국과 무역협정을 협상하고 있으며, 공정한 협상을 하거나 협정을 폐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을 군사적으로 방어하고 있지만, 보답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AFP 연합뉴스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수시로 말을 바꾸고 종잡을 수 없는 성격상 트럼프 대통령의 속마음을 자세히 알 길은 없다. 그러나 작년 6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연기 논란 이후 한국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반응이 날카롭고 신경질적으로 변한 게 사실이다. 사드 파문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작년 9월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FTA 폐기 서한을 작성하기도 했으나 주변에서 말려 일단 보류했다.

미 상무부는 지난 16일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해 철강·알루미늄에 높은 관세를 부과할 대상 12국 중 하나로 한국을 명시했다. 무역확장법 232조가 '안보의 위협'을 이유로 높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한 조항임을 감안하면, 동맹으로서 한국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다.

올림픽 개막식이 있던 지난 9일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인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 연구원은 트위터에 "만약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김(여정)이 말다툼한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끼어들까 아니면 지켜보고만 있을까. 그냥 물어보는 것"이라고 적었다. 백악관과 거리를 좁히기 위한 문 대통령의 노력에도 워싱턴에선 문재인 정부에 대한 의심을 버리지 않고 있다. 어쩌면 백악관이 정밀 타격을 위해 만들었다는 '코피 전략'은 북한 핵 시설이 아니라 한국 경제를 겨냥하고 있을 수도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19/201802190284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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