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17일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많은 기대를 하지만 마음이 급한 것 같다"고 했다. "우리 속담으로 하면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고도 했다. 지난 10일 김정은이 정상회담을 제의한 데 대해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키자"고 했던 것보다 더 신중한 발언이다. "남북대화가 미국과 북한의 대화로 이어지길 기다리고 있다"고 한 것이 바로 그 '여건의 성숙'이다. 김정은에게 '미·북 비핵화 대화에 나서야 남북 정상회담도 할 수 있다'는 일종의 '역(逆) 제의'와 같다. 문 대통령은 일주일 사이에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한 두 차례 발언으로 현 상황에 변화가 없는 한 시기상조임을 명확히 했다. 북이 비핵화 뜻을 밝히고 미국과 대화를 먼저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햇볕론자들의 '무조건 남북 정상회담'과는 분명히 다른 신중한 자세다.

김정은이 지금 왜 대남 미소 작전을 펴면서 남북 정상회담을 하자는 것인지는 모두가 안다. 현재의 대북 제재는 과거와는 차원이 다르며 자칫 북 정권의 안위를 위협할 수도 있다. 그런 심각한 판단 아래 문재인 정부를 방패막이로 삼아 대북 제재에 구멍을 내려는 것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신중하게 나오고 있다. 어쩌면 김정은으로서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상황일 수 있다. 문 대통령이 더 분명하게 원칙을 지켜 '비핵화 아닌 출구는 없다'는 사실을 김정은이 절감케 해야 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을 둘러싼 세력 중 상당수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들은 이미 북한 비핵화를 포기하고 '핵 있는 평화'라는 5200만 핵 노예화 구상을 흘리기 시작하고 있다. 일각에선 정부가 뒤로는 국정원을 내세워 북과 정상회담 관련 협상을 하고 있으면서 문 대통령이 겉으로 '속도 조절' 발언을 하고 있다는 관측도 하고 있다. 우리 정부 관계자가 지난해 말 최소한 2차례 이상 평양을 방문해 한·미 군사훈련 중단과 북의 올림픽 참가 논의를 했다는 보도도 심상찮아 보인다.

대한민국 안보에 2000년, 2007년의 1, 2차 남북 정상회담은 큰 해악을 끼쳤다고 할 수밖에 없다. 2000년 회담은 붕괴 직전의 김정일 정권에 산소호흡기를 달아줘 핵 개발을 계속할 수 있게 했고, 2007년 회담은 비핵화는 사실상 말도 꺼내지 못한 퍼주기 회담이었다. 두 번의 정상회담을 통해 북은 한국을 안보·군사 문제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재앙과 같은 결과다. 한·미 공조와 철저하고 강력한 유엔 제재는 남북대화와 정상회담을 올바른 길로 이끄는 두 개의 축(軸)이다. 문 대통령이 이 원칙을 앞으로도 흔들림 없이 지켜나가면 어려워 보이는 북핵 해결의 문이 열릴 수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18/201802180164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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