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화재나 수해가 나면 으레 실리는 기사가 있다.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지키느라 자기 목숨이나 자식·아내를 구하지 못한 영웅적 행동'이란 내용이다. 김일성 사진에 조금만 흠이 생겨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런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다고 한다.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 당시 북한 응원단이 비 맞는 '김정일 사진 현수막'을 보고 "태양처럼 모셔야 할 장군님 사진이 비에 젖는다"며 울고 소동을 벌였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10일 평창 동계 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경기에서 북한 응원단이 사용한 젊은 남자 얼굴 가면(假面)이 김일성 얼굴이냐 아니냐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그날 밤 국내 한 매체가 '북 응원단이 김일성 가면을 썼다'고 보도하자 야당 의원이 페이스북에 '김일성 가면이 맞는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그러자 통일부는 "북한에선 (김일성을) 그런 식으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는 긴급 해명 자료를 냈다. 해당 매체는 곧바로 그 기사를 '오보'라며 삭제했다. 
 
[만물상] 김일성 가면 식별법

▶평창 개막 3일째인 11일 오후까지 인터넷 검색어 1위는 올림픽이 아니라 '김일성 가면'이었다. 북한 체제 특성상 신(神)이나 다름없는 김일성 얼굴에 눈구멍까지 뚫어 응원 도구로 썼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고 탈북자들은 말한다. 김일성 손녀인 김여정이 선전선동부를 이끌고 있기에 '김일성 가면' 발상은 나오기 어렵다고도 한다.

▶그러나 가면의 얼굴이 김일성 젊었을 때 모습과 무척 닮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북한의 얕은꾀에 속고 뒤통수 맞아온 국민으로선 '김일성 가면 아니냐'는 의심이 들 만하기도 하다. 인터넷에서 누군가 김일성 가면인지 아닌지 알아보는 식별법을 제안했다고 한다. 북 응원단 앞에서 그 가면을 태워보면 안다는 것이다. 실행은 불가능하겠지만 답은 바로 나올 것 같기도 하다.

▶김정은이 평창올림픽에 여성 응원단과 현송월 악단, 여동생 김여정 등을 보낸 이유는 굳 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가면 하나만 갖고도 여당은 야당을 '트집 잡기와 색깔론'이라고 비난하고 야당은 '괴이하고 끔찍한 일'이라고 맞선다. 김정은이 남북 정상회담 카드까지 던진 만큼 남남(南南) 갈등을 키우려는 북의 공세는 더 거세질 것이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하고 주시해야 할 것은 핵무장에 한국 정부를 방패막이로 쓰려는 '김정은의 미소 짓는 가면'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12/20180212027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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