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평양에 초청한 것 등과 관련, 미국·일본 언론은 북한의 제안이 한·미·일 공조를 흔들기 위한 것이라면서 북한의 핵 포기 없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의 방북과 대화 재개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반면, 중국 언론은 남·북 정상회담을 환영한다며 관련국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 정세를 둘러싼 입장이 각자의 국익에 따라 점차 선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북한 삼지연 관현악단 공연이 열린 국립극장에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조선일보 DB

◇ 美 “한·미·일 대북 제재 빛샐 틈 없다”…WSJ “평양 올림픽 성공”

일단, 미국 정부는 최대한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김정은의 평양 초청 소식이 전해지자 백악관은 지난 10일(현지 시각) “북한을 향한 통일된 대응에 대해 한국 측과 긴밀히 연락하고 있다”는 짧은 반응만을 내놨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 역시 방한 후 귀국하면서 수행 기자단에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할 때까지 북한을 경제·외교적으로 계속 고립시켜야 하고, 이러한 노력에 미국과 한국, 일본은 빛 샐 틈이 없다”고 밝히며 북한에 대한 최대 압박 입장을 되풀이했다.

펜스 부통령의 보좌관은 지난 11일 트위터에 ‘김여정이 동계올림픽의 시선을 훔쳤다’는 제목의 CNN 기사를 거론하며 “훔쳤다는 말이 나와서 한마디 보태자면 오토 웜비어는 북한에서 포스터를 훔쳤다는 혐의를 받고 고문 끝에 사망했다. 이러한 북한의 과거를 눈가림하지 말자”고 남기는 등 미국 백악관 안팎에선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형국이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보좌관이 트위터에 김여정의 ‘시선 빼앗기’를 비판했다. /트위터
미국 보수 언론은 트럼프 행정부의 속내를 좀 더 적나라하게 표출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1일 ‘평양 올림픽’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북한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만큼 (체제 선전에) 큰 홍보 효과를 거뒀다”면서 “이번 올림픽의 승자는 북한”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WSJ는 이 사설에서 “비핵화 이후에서야 대화를 시작하겠다는 한·미 정책을 이간질하려는 북한 탓에 펜스 부통령은 어색한 처지에 놓였다”며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이러한 가식·위장과 관련, 더 많은 비판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썼다.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 등 진보 계열 언론은 남북 회담이 긴장 완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북한이 핵 포기의 명확한 신호를 보내지 않는 한 큰 진전을 이루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 부부(가운데)가 지난 9일 경기도 평택 해군 2함대 사령부를 방문해 천안함을 둘러보고 있다. /주한 미국 대사관
김여정의 방남(訪南)에 대해서는 보수 언론과 비슷한 시각을 보였다. NYT는 ‘김여정의 매력이 펜스의 스포트라이트를 차지하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북한이 한국에 대표단을 보냈을 때 전 세계는 김정은에 시선을 빼앗길까 걱정했다”면서 “만약 그것이 김정은의 의도였다면 김여정은 그 누구보다 제 역할을 해냈다”고 진단했다.

◇ 日 남북 회담 반대 기류 역력…비핵화 한목소리

북한 핵무장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있는 일본 측은 미국보다 더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다.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방위상은 최근 기자단에 문 대통령의 방북 가능성과 관련, “과거 일본도, 한국도 북한의 융화(유화)적인 정책에 편승했지만, 결과적으로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을 계속했다”면서 “그에 대한 반성을 한국도 충분히 인식해 확실히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9일 강원도 평창군 용평리조트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 청와대
마이니치신문은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가 문 대통령이 평양을 가서는 안 된다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고 11일 전했다. 이 신문은 “북한이 비핵화로 가는 구체적인 행동을 표시하지 않았는데도 문 대통령이 방북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외무성 간부의 말도 전했다. 일본 정부 내 남북 정상회담을 반대하는 기류가 역력하다는 것이다.

아사히신문 역시 ‘남북 회담 비핵화 목표 견지해야’라는 제목의 11일자 사설에서 남북 정상 회담 제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비핵화라는 중요한 목표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아사히신문은 “남·북 회담뿐 아니라 한·미·일 공조의 틀 속에서 대북 제재를 유지해야 한다”면서 “왜 비핵화가 필요한지 김정은에게 말하는 그러한 노력을 촉구하고 싶다”고 했다.

◇ 中 “펜스 부통령이 김여정에 패배…美 대북 협박 인기 없어”

반면, 중국 정부를 대변하는 관영매체들은 남북이 노력해 이뤄낸 성과라고 평가했다. 비핵화 의제가 빠진 남북 회담에 견제구를 던지는 미국·일본과 시각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11일 “평창올림픽 남북 공동 참가는 남북이 서로를 향해 다가가서 얻은 성과”라며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려면 남북 간에 대승적 차원의 합의가 필요하고 관련국들의 협조와 지지도 끌어내야만 한다”고 보도했다. 관영 환구시보는 “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남북 긴장을 완화하고 변화의 기회를 만들기 바란다”고 밝혔다. 대다수 중국 언론은 비핵화에 대해선 언급을 피했다.
 
후시진 환구시보 편집장은 최근 여러 차례 남북 회담을 환영한다는 글을 남기고 있다. /트위터
또한 후시진(胡锡进) 환구시보 편집장은 트위터에 “펜스 부통령이 서울에서 김여정에 패배했으며, 이는 미국의 대북 협박이 인기 가 없다는 명백한 증거”라고 조금 더 적나라한 의견을 썼다. 그는 “김여정이 이번에 서울에 왔으니, 다음엔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에 가야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용기를 내어 평화의 기회에 한 발짝 더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후 편집장은 지난해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논란 당시 한국인들을 향해 “김치만 먹어서 멍청해졌나”라는 글을 썼던 인물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12/201802120064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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