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 올림픽' 된 모스크바·LA처럼 정치가 스포츠보다 더 막강
美, 북핵 문제의 결정적 당사국… '北 갑질' 묵인하는 한국에 불만
 

이춘근 한국해양전략硏 선임연구위원
이춘근 한국해양전략硏 선임연구위원
올림픽은 정치와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촉진하자는 스포츠 정신에 기반을 두고 성립되었다. 그러나 국제정치 현실은 언제라도 스포츠와 평화보다는 정치와 전쟁이 더욱 막강한 것임을 증명해 주고 있다. 올림픽을 위해 휴전이 성립된 적은 없었지만, 정치 때문에 올림픽이 엉망이 된 적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2차 세계대전 중인 1940년과 1944년 올림픽이 열리지 못했고,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략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과 미국 주도의 자유 진영 국가들이 불참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은 소련 진영 국가들이 보복 불참으로 역시 반쪽짜리가 됐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는 소련 선수들은 물론 소련 KGB 요원들도 대거 참여해, 서울은 미·소 간 치열한 첩보전의 장(場)이 되기도 했다. 정치가 올림픽에 우선한다는 드라마틱한 사례는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가 러시아 선수에게 금메달을 '날치기'당했던 일이다.

평창올림픽도 어느 올림픽 못지않은 정치적인 행사가 되고 있다. 특히 북한은 자신에게 가해지던 국제적인 제재와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출구로 평창올림픽을 백분 활용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북한과의 대화의 끈을 지속시키겠다는 일념으로 북한에 모든 것을 다 양보했다.

한국 선수들 유니폼의 태극기도 떼어 주었고 4월 25일 열리던 북한의 군 창건 기념 열병식이 올림픽 개막식 하루 전으로 바뀐 심상치 않은 이유도 우리가 먼저 그럴 수도 있는 정당한 일이라며 변호해 주었다. 북한은 평창올림픽 관련 남북대화에서 완벽한 '갑(甲)' 노릇을 하고 있다.
지난 8일 북한 '건군절'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이동식발사차량(TEL)에 실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가 등장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전했다. /연합뉴스
언제부턴가 남북대화가 북한의 의도에 따라 열릴 수도 파탄 날 수도 있는 구조가 되고 말았다. 한국 측이 오매불망 대화를 원했던 결과다. 북한이 원하지 않는 주제에 대해서는 입도 열 수 없는 구조다. 북한이 삐져서 대화를 그만둘 것을 더 두려워한다. 한국 정부가 대화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애달픈 노력을 하고 있지만, 지금 같은 일방적인 구조에서 '북한의 핵 포기'를 목적으로 하는 대화가 열릴 수 있겠는가?

금명간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되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미국 국가 안보의 치명적 위험으로 간주하는 미국은 한국 못지않은 북한 핵 문제의 결정적 당사국이다. 그러나 미국은 대한민국이 시도하는 대화의 방식에 불만이 대단히 많다. 물론 미국도 북한과 대화를 원한다.

마이크 폼페오 CIA 국장은 성공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외교'가 북핵 문제 해결의 원칙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폼페오 국장은 북한 지도자들에게 '트럼프 행정부는 과거 미국 정부들과 달리 반드시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고야 말 결기(決起)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경고했다.

니키 헤일리 유엔 대사의 언급을 통해 북한과의 대화를 위한 조건도 제시했다. 첫째, 미국이 인정할 수 있는 상당 기간 동안 핵과 미사일 실험을 하지 말 것, 둘째 핵 폐기 의지를 먼저 천명할 것 등이다. 미국은 핵 폐기를 목적으로 하는 대화 이외의 다른 대화는 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한국은 올림픽 개막식 행사 과정에서 펜스 부통령과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같은 테이블에 배치, 자연스러운 대화를 유도하려 했지만 펜스 부통령은 5분 만에 리셉션장을 나가 버렸다. 며칠 전 트럼프 국정 연설에서도 분명히 보여 줬지만 미국은 북한 문제를 단순한 핵 문제만으로 보지 않는다.

미국은 김정은 정권의 인사들을 같은 테이블에 마주 앉을 수도 없는 잔인한 독재자요, 인권 유린 범죄자들로 본다. 평화의 장(場)이어야 할 평창올림픽은 정치가 압도하는 장소가 되었고 북한을 향한 미국의 분노를 대폭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평창 이후, 미국과 북한 관계는 물론 한·미 관계가 어떻게 되는 건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11/2018021101817.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