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병력으로 ‘밀봉’해서 치른 삼지연 관현악단 공연
삼엄한 경비 속 관객들은 대체로 공연에 만족감
그들이 ‘감동’을 줬지만, 그들이 누군지는 모른다?

바리케이드도, 들뜬 얼굴도, 북소리도 없었다. 컬링 선수단을 실어온 버스가 몇 대 보일 뿐이었다. 9일 아침, 강릉시 교동의 강릉아트센터는 화장 지운 얼굴 같았다. 아침의 공연장이 그렇듯, 왕래객이 없었다.
이제서야 컬링경기장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 한국 혼성컬링팀(장혜지, 이기정)이 핀란드를 꺾으며 기세 좋게 출발했다. 아트센터의 인파를 힐끗 바라보던 이들 중 그들도 있었을까.

8일 밤 강릉에서 본 것은 ‘형광색’이었다.
15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는 북한 공연단, 현송월(나이를 아직도 모른다)이라는 여성이 단장인 삼지연 관현악단의 공연장 주변에는 관객만큼이나 의경이 많았다.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아아 이슬같이 이 한 몸 바치리라”
8일 저녁 8시, ‘50명쯤 된다’고 하면 과장이 될 숫자의 중노년들을 300명이 넘는 의경들이 3겹, 4겹씩 둘러쌌다.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비장했지만, 이걸 들어주는 건 지나가는 자동차와 의경들뿐이었다. 의경의 숫자는 어느새 5겹, 6겹으로 노인들을 에워쌌다. ‘압박하는’ 형광색이었다.
 
태극기와 북소리로 무장한 시위대들. ‘평양올림픽 반대’라는 주장이었다.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우리가 통일합시다” 공연장 진입로 쪽, 한반도기를 든 이십여 명 젊은이들의 노래와 율동을 한다. 만난 지 오래되지 않은 듯, 입과 동작은 서로 잘 맞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의경이 배치됐지만, 그냥 바로 보고 쪽이다. ‘방관하는’ 형광색.

몇 발짝 더 가면 강릉아트센터. 센터를 빙둘러 형광색 파카를 입은 의경들이 에워쌌고, 그 형광색들은 공연장 유리문까지 두 줄로 도열해 있다. 사복을 입은 형사들이나 비표를 단 관계자들 외에는 그 사이를 걸어갈 수 없다. ‘남쪽 사람들로부터 북쪽 사람을 보호하는’ 형광색이었다.
누군가는 이 행사를 ‘밀봉’이라고 표현했다. 꽁꽁 싸맸다는 뜻이다.
그게 가능했던 건, 하루 내내 부동 자세로 서 있던 의경들이었다. 행사 공로자 명단에 ‘경찰’이 빠져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민족끼리 통일합시다’ ‘평화올림픽’ 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공연장을 에워싼 의경들. 이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할 공연이었을까.



8일 저녁 8시10분 ‘반갑습니다’로 시작해 9시 45분 ‘다시 만납시다’로 끝난 삼지연관현악단의 공연을 본 이들은 공연이 괜찮았다고 했다. “북한도 같은 민족인데 여기 와서 노래하니 보기 좋지”같은 경기도 출신 83세의 감상평부터 “암표가 300만원이라는데 공짜로 봤으니 로또 맞은 것”이라는 얘기까지. “아는 노래를 해줘서 아주 좋았다”, “아이 데리고 왔는데 뭔가 분위기가 선정적이었다”, “우리나라 80년대 극장식 공연 같다”는 평도 있었다. 사람마다 달리 보고 달리 표현했지만, ‘괜찮다’부터 ‘훌륭했다’가 주류였다.
남북의 관이 합심한 이 ‘관제(官制) 행사’의 감동은 그럼에도 사적(私的)이었다. 약 900명이 이십 분도 걸리지 않아 공연장을 다 빠져나갔다.

밤 10시가 넘어서도 200명 의경들은 여전히 부동자세였다. 간간히 무전소리가 들렸다.
밤 11시 15분, 공연장 앞에 주차한 넉 대의 관광버스와 검은색 세단에 시동이 켜졌다. 그들이 온 지난 6일부터 진을 치고 있던 언론사 카메라맨은 “따뜻하게 모시려고 예열을 20분쯤 한다. 북한 쪽 사람들이 그때 나올 것”이라고 했다.

묵호항에 정박한 ‘만경봉호’를 숙소로 쓰는 그들에겐 법칙이 있었다. 아침 8시30분 아트센터 도착, 11시 30분 버스 승차, 오후 2시30분 센터로 귀환. 연습을 마치고 저녁이나 밤에 돌아갈 때도 패턴이 있다. 20분간 현송월이 타는 세단과 단체버스 4대 예열, 현송월 선두, 이어 미인 선두그룹 20명, 남성은 맨 나중. 그리고 이들이 나오기 10분 전이면 2층의 우리측 안내원들이 겉옷을 챙겨입는다.
시동 건 지 23분이 지난 11시38분, 현송월이 나타났다. 그리고 미인들 선두그룹, 2진 그룹 식으로 어김이 없었다. 사진 찍히는 것에 만성이 된 듯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플래시 벽을 통과해 버스에 올랐다.

‘한반도기 부대’의 열렬한 환송인사를 받으며 현송월이 탄 세단과 넉 대의 버스가 아트센터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십 분 후, 의경들이 철수했다. 한국인으로부터 북한 사람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은 의경들의 임무가 비로소 끝난 것이다.

관객도, 의경도 떠난 아트센터 무대에 들어가 봤다. 무거운 장비들이 빠르게 철거되고 있었다.
공연 관계자 중에는 말 못한다고 벽을 치는 사람도, 그런대로 잘 해 주는 사람도 있었다.
‘공연단 중에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나’는 공통된 질문을 해봤다.
“담배 같이 피우면서 이름을 알게 된 사람이 몇 있다. 나머지는 모른다” “이름은 전혀 모른다” “이름 같은 건 물어보기가 어렵다” .
‘왜 이름을 물어보기 어려운가’ 물었다.
“워낙 민감한 문제라” “민감한 이슈잖아요”
공연자 대기실에 꽃장식을 납품했던 꽃집 주인에게 ‘꽃값이 얼마냐’ 물었더니 차에 올라타면서 말했다. “그건… 민감한 문제잖아요.”
우리 국민은 ‘민감(敏感)’을 의무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묻지 않을 의무와 감동받을 권리만이 있었던 1차 공연이 끝났다.
그런데 정말 물으면 안 되는 것이었나.
공연에서 핑크색 드레스를 입었던 키 165cm의 그 여성단원은 이름이 무엇이고, 나이가 몇 살일까. 공연자라 하기엔 연로했던 다른 여성은 대체 하는 일이 무엇일까. ‘삼지연 관현악단’이라는 ‘집단명’ 말고 개개인들은 누구였을까.
서울서 열리는 두번째 공연에서는 이 질문에 답을 좀 해줬으면 좋겠다.
“반갑습니다. 그런데 댁들은 누구세요?”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09/201802090132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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