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최대 과제는 대북 제재 무력화
文·金 회담 열고 쌍중단, 남북 교류 요구하면 남·남, 한·미는 소용돌이 빠져들 수 있다
 

양상훈 주필
양상훈 주필

김정은은 현재의 대북 제재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이를 깨는 것이 최대 과제다. 그 전략은 김정은의 신년사에 담겨 있다. 그는 '올해 민족에 두 개의 경사가 있다'고 했다. 하나가 평창올림픽이고 다른 하나가 9·9절(북한 정권 수립일) 70년이라는 것이다. 이미 평창올림픽 참가 결정을 내리고 김씨 일가 중 처음으로 김여정을 한국에 보내 한·미 사이를 휘젓고 있다. 9·9절에 대한 전략도 벌써 구체적으로 수립돼 있을 것이다.

평창올림픽과 9·9절 사이에는 6·15(남북정상회담)와 8·15가 있다. 김정은은 평창올림픽 이후 북핵 위기가 다시 고조되는 순간에 '6·15나 8·15 즈음에 남북정상회담을 열자'고 전격 제안할 수 있다고 본다. 6·15를 고를 가능성이 더 크다. 한국의 지방선거와 맞물려 있어 문재인 정부가 더 큰 유혹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정상회담이 9·9절로 연결되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당연히 수락한다. 지금 정부가 욕을 먹어가며 북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노심초사하는 것은 남북정상회담까지를 의식한 때문일 것이다. 정상회담과 한·미 연합훈련이 양립하기는 어렵다. 문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이유로 미국에 한·미 훈련을 재차 연기하거나 대폭 축소하자고 요청하면 여기서부터 한·미 간에 본격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어떻게 나올지 예측하기는 힘들다. 트럼프는 11월에 의회 중간선거를 치러야 한다. 현재 분위기라면 트럼프의 공화당이 불리하다. 두 달 전 공화당은 25년간 져 본 적 없던 앨라배마주 상원 보궐선거에서 졌다. 미국의 역대 대북 정책은 중간선거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1994년 미·북 제네바 합의도 중간선거를 앞두고 나온 것이다. 올해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지면 트럼프의 탄핵 위험지수는 더 올라간다. 트럼프는 중간선거에서 남북정상회담과 그에 이어질 수 있는 미·북 회담을 자신의 치적으로 내세우고 싶을 수 있다.

트럼프가 남북정상회담과 한·미 훈련 연기·축소·취소에 동의할 마음이 있다고 해도 펜스 부통령,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이나 매티스 국방장관은 트럼프와 생각이 다를 것이다. 이들은 지금 대북 제재·압박 전선이 약화되면 결국 북핵을 사실상 인정하거나 아니면 정말 군사 조치에 나서야하거나 둘 중 하나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이렇게 미국 내부도 갈라질 수 있다. 결국엔 중간선거를 앞두고 '일단 만나 대화해보자'는 주장이 득세할 가능성이 더 클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 김정은은 '쌍중단'(북핵·미사일 실험과 한·미 훈련 동시 중단)을 제안할 수 있다. 중국과 문정인 특보가 주장하는 것이다. 쌍중단으로는 북의 핵탄두 생산을 막을 수 없다. 따라서 한·미 훈련 중단은 핵실험 중단이 아니라 북의 비핵화 협상 복귀와 맞교환되는 것이 옳다. 김정은은 또 10·4(노무현·김정일 회담) 선언 이행을 요구할 것이다. 10·4 선언의 내용은 수십조원도 넘을 전면적 대북 지원이다. 문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면 유엔 대북 제재는 사실상 그날로 끝난다. 북이 비핵화 협상에 나서겠다고 하지도 않는데 쌍중단과 10·4 이행 문제가 불거지면 남·남, 한·미 간 갈등이 정말 심각하게 터져 나오게 된다.

현 정부 사람들은 북핵을 미국과 협상용이라고 믿는다. 말은 '북핵 불용'이라고 하지만 말뿐이다. '핵은 쓰지도 못할 텐데 북한이 좀 갖고 있으면 어떠냐'는 게 본심에 가깝다. 이른바 '북핵 아래에서의 평화' '핵 있는 평화'다. 그래서 핵 문제는 미국과 북한이 논의하고 남북은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등 전면적으로 교류하는 가운데 그 분위기로 지방선거를 치르고 싶어 한다.

김정은은 핵과 ICBM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미국과 비핵화 협상을 하더라도 최대한 길게 끌고 가는 한편으로 남북 교류를 확대해 대북 제재를 유야무야하려 할 것이다. 이를 잘 아는 미국은 북과의 비핵화 협상을 단기간 내에 담판 지으려 한다. 키신저의 충고다. 그 과정에서 다시 남·남 갈등과 한·미 갈등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일단 남북정상회담이 합의되고 남북 인적 교류가 벌어지면 미 국의 대북 군사 조치는 어려워진다. 나중에 미·북 협상이 결렬됐다고 다시 군사 조치로 되돌아가 대응 수위를 끌어올리기도 힘들 것이다. 그때 또 남·남과 한·미 갈등이 불가피하다. 김정은의 남북정상회담 카드는 그의 입장에서 상대의 심장부에 던지는 정치 폭탄이다. 큰 파도가 다가오고 있다. 방향타를 조금만 잘못 돌려도 배가 전복될 수 있을 만큼 큰 파도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07/201802070319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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