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의 남과 북]

만경봉호 나와 강릉서 리허설… 현송월, 샤넬백 들고 나타나
1시간 거리 배로 돌아가 점심 식사, 저녁은 공연장서 배달음식 시켜
응원단, 경의선 육로 통해 내려와… 뭐 준비했나 묻자 "보시면 압네다"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석할 북한 응원단과 태권도시범단, 기자단 등 북한 대표단 280명이 7일 경의선을 통해 한국을 방문했다. 하루 전 만경봉 92호를 타고 강원도 동해시 묵호항에 온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 등 북한 예술단 114명은 8일 공연을 위해 이날 본격 연습을 시작했다. 리허설 때 이선희의 'J에게' 등 한국 가요와 팝송을 불렀다.

◇북, 예술단 'J에게' 등 리허설

지난 6일 만경봉 92호 안에서만 머물렀던 예술단 114명은 이날 오전 8시 30분쯤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여성들은 평양을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붉은색 코트에 검은색 털모자, 목도리 차림이었다. 남성은 검은색 코트와 털모자를 입었다.

만찬장 모인 北응원단 - 북한 응원단원들이 7일 숙소인 강원도 인제 스피디움에서 열린 만찬에서 천해성 통일부 차관의 환영사를 들은 뒤 박수 치고 있다.
만찬장 모인 北응원단 - 북한 응원단원들이 7일 숙소인 강원도 인제 스피디움에서 열린 만찬에서 천해성 통일부 차관의 환영사를 들은 뒤 박수 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예술단은 약 1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강릉아트센터로 이동해 리허설을 시작했다. 이들은 오전 11시 40분쯤 오전 연습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만경봉호로 가서 점심을 먹었다. 왕복 2시간 거리를 이동해 식사한 것은 예술단원의 외부 노출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현송월을 비롯해 예술단원은 점심 식사 후 인공기가 가슴에 새겨진 붉은색 긴팔 티셔츠에 검은색 바지로 갈아입었다. 오전 악기와 무대 설비를 점검한 예술단은 오후 본격적인 연습을 했다. 주로 클래식 곡을 연주했고, 전통민요와 한국 가요도 연습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술단은 배달음식을 먹으며 연습한 뒤 오후 9시 20분 만경봉 92호로 돌아갔다.

현송월은 이날 검은색 샤넬백을 들고 나타났다. 지난 15일 판문점에서 예술단 공연 남북 실무접촉을 할 때는 초록색 핸드백을 들고 나왔는데, 당시 에르메스 모조품 논란이 일었다. 현송월은 '연습이 어땠냐'는 취재진 질문에 웃는 얼굴로 "네. 좋았습네다"라고 했다. 이날 천해성 통일부 차관이 강릉아트센터를 방문해 약 30분간 현송월과 권혁봉 문화성 국장 등 북측 관계자를 만났다. 8일 공연에는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참석할 예정이다. 북한 예술단은 11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공연한 뒤 13일 만경봉 92호를 타고 돌아갈 것으로 알려졌다.

◇응원단 "기존에 없던 것 보여주겠다"
 
북한 응원단 229명은 이날 김일국 체육상(장관급) 등 북한 조선민족올림픽위원회(NOC) 관계자 4명, 태권도시범단 26명, 기자단 21명과 함께 오전 9시 30분쯤 경의선 파주 도라산역 남북출입국사무소(CIQ)에 도착했다. 북한 응원단의 한국 방문은 2005년 인천 아시아육상경기선수권대회(124명) 이후 13년 만이다.

CIQ에서 응원단원들은 대부분 취재진 질문에 답하지 않고 "반갑습네다"라고만 했다. 단장 격으로 보이는 한 20대 단원은 '응원은 무엇을 준비했느냐'는 질문에 "보시면 압네다. 지금 다 이야기하면 재미없지 않습네까"라고 했다. 응원단원들에게 나이를 묻자 "각양각색입니다" "스물다섯 살입니다"라고 답했다. 응원단은 민속악기와 관현악 악기를 함께 가지고 왔다. 일종의 밴드인 취주악단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지원 인력으로 보이는 한 남성은 "좌우지간 기존에 없던 것을 보여줄 생각"이라고 했다. 북한 대표단은 버스와 승용차 를 타고 오전 11시 40분쯤 CIQ를 출발했다. 가평휴게소에서 한 차례 쉬고 NOC 관계자들은 평창 홀리데이인 호텔, 나머지는 강원도 인제 스피디움 숙소로 이동했다.

통일부는 이날 오후 7시 30분 북한 대표단을 위해 인제 스피디움에서 환영 만찬을 열었다. 천해성 차관 등 우리 측 30여명과 안명국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등 북측 100여명이 참석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08/201802080030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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