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방부가 연내 워싱턴 D.C에서 대규모 열병식을 거행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6일(현지시간) 밝혔다. ‘힘을 통한 평화’ 와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해온 트럼프가 그간 여러 차례 열병식을 희망해 온 데 따른 것이다.

미국 역대 대통령 대부분은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군국주의 혹은 독재 정권의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 열병식을 피해왔다. 미국이 특별한 계기도 없이 핵무기를 비롯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거행하면 북핵 문제를 둘러싼 한반도 정세에도 긴장을 고조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7월 프랑스에서 열린 열병식에 참석한 뒤 “최고의 열병식”이었다며 극찬했다./BBC캡처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조지프 던포드 합참 의장 등과 회동한 자리에서 “프랑스와 같은 열병식을 원한다”고 발언해 군 고위급에서 준비 중이라고 보도했다. WP 보도를 접한 백악관은 대통령의 지시를 확인했고, 국방부는 “세부 사항을 결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WP는 “트럼프가 지시한 열병식은 군인이 행진하고 탱크가 줄지어 지나가는 형태로, 트럼프 스스로 ‘대원수(군대의 계급으로 원수보다 상위)’ 역할을 맡거나 관람석에서 이를 지켜볼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7월 프랑스 방문 때 프랑스 대혁명을 기념하는 열병식에 참석한 뒤 “내가 본 최고의 열병식 중 하나였다”며 극찬을 쏟아냈고, 9월에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미국 독립기념일에 (워싱턴) 펜실베이니아 거리에서 군사력을 보여줄 수 있는 멋진 열병식을 여는 것을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7월 프랑스 대혁명을 기념하는 열병식에서 사열용 지프에 탑승해 샹젤리제 대로를 행진했다./플리커

백악관은 열병식 날짜로 독립기념일(7월 4일)이나 메모리얼 데이(전몰자 추도기념일, 5월 28일)를 논의하고 있지만 국방부는 재향 군인의 날(11월 11일)을 더 선호하고 있다고 군 관계자는 전했다. 마침 오는 11월 11일이 1차 세계 대전 승전 100주년과 겹쳐 트럼프 대통령이나 정치와의 연관성을 희석시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장소 역시 논의 중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을 잇는 펜실베니아 애비뉴를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본인의 취임식 퍼레이드 경로다.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 앞으로도 지나간다.

대규모 열병식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희망이 현실화하게 됐지만 비판도 적지 않게 나온다. 냉전 시대였던 1949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 취임식,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 취임식과 1991년 걸프전 승리 기념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 외에 미국의 역대 대통령은 열병식을 피해왔다고 WP는 전했다. 과거 소련의 붉은 광장에서 열린 행진이나 북한의 미사일 열병식 등과 유사하다는 이유에서다.
 
북한은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오는 8일 건군절 기념 열병식을 거행할 것으로 알려졌다./조선일보 DB

더글라스 브링클리 라이스대 역사학과 교수는 “미국이 특별한 이유없이 열병식을 거행한다면, 전세계는 전체주의 국가를 떠올리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통령 연구가인 마이클 베쉬로스는 “냉전 시대로 회귀하는 것처럼 보인다”며 “과거 소련이 열병식을 했던 이유 중 하나가 소련 군대가 생각보다 부진한 점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대규모 열병식은 북한에 대한 군사력 위협 메시지로 받아들여져 한반도 정세 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초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핵버튼 위협에 맞서 트위터에 “나도 핵버튼이 있다. 더 크고 강하다”고 조롱하며 미국의 군사력을 과시했다. 백악관 관계자는 “열병식은 김정은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밝혔으나, 북한 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등에도 강력한 군사적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소지가 다분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07/201802070165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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