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통성 흔들며 분단 책임 남한에 돌릴 가능성]

- '南,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 삭제
남북 협상 등 학습 과제로 제시, 정부수립 반대 활동 상세히 기술

- 6·25, 북한의 남침도 명시않고…
분단 고착화 원인 반공주의 지목… 반공반북 폐기 대놓고 주장 우려

- 남북 화해·평화통일 더 부각
北 인권·세습 전혀 언급안해… "특정 사관에 꿰맞추기" 비판
 

2020년부터 전국 고등학생들이 배우는 한국사 교과서의 현대사 부분은 이전 교과서와 완전히 다른 내용이 될 전망이다. 현재 교육부가 마련 중인 교육과정과 집필 기준 시안(試案)을 그대로 적용하면, 새 교과서는 대한민국 수립과 발전 과정에 대한 설명 대신 남북 분단에 대한 비판과 극복 노력에 상당한 비중을 둔다. 좌파 학자들이 주장하는 '분단 극복 사관(史觀)'과 '분단 체제론'이 교과서에 그대로 들어오는 것이다. 종래의 역사 교과서 좌편향 논란이 특정 사실을 넣고 빼거나, 서술 방향 등에서 빚어졌다면 이번엔 교과서의 기본 틀이 바뀌어 더 큰 논란이 예상된다.

대한민국 정통성 두 기둥 흔들려

새로운 한국사 교육과정은 현대사 부분 도입부에 "8·15 광복 이후 정치적 상황의 변화와 통일국가 수립을 위한 노력을 파악한다"고 명시했다. 집필 기준은 '8·15 광복과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한 노력'을 소주제로 설정하고 좌우 합작 운동, 남북 협상, 제주 4·3사건을 학습 요소로 제시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반대한 정치적 움직임을 상세히 다루도록 한 것이다. '분단 극복 사관' 주창자인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는 "4·3사건은 최초의 통일 시도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반면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 과정과 의의를 살펴본다" "남한과 북한에 각각 들어선 정부의 수립 과정과 체제적 특징을 비교한다"고 간략하게만 서술했다.
 

이런 구성은 현행 교과서들이 근거로 삼은 2009년 교육과정, 집필 기준은 물론 노무현 정부 때 만들어진 2007년 교육과정, 집필 기준과도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2009년 집필 기준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및 국가 기틀이 마련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유엔으로부터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받은 사실에 유의한다"고 제시했다. 2007년 집필 기준은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제국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한 정통성 있는 국가임을 설명한다" "UN의 결의에 따른 총선거를 통해 대한민국이 수립되고, UN에 의해 합법 정부로 승인됐음을 강조한다"고 했다.

반면 이번 정부의 새 교육과정은 통일 정부 수립 노력의 '좌절'을 강조한 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서술하도록 해 학생들로 하여금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에 의문을 갖게 할 가능성이 높다. 대한민국의 국제법적 정통성을 뒷받침하는 'UN의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 승인'도 집필 기준에서 빠졌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지탱하는 두 기둥이 모두 흔들리는 것이다.

남한에 분단 지속 책임 돌릴 가능성

교육과정은 또 6·25전쟁에 대해서는 "6·25전쟁의 배경과 전개 과정을 살펴보고 전후(戰後) 남북 분단이 고착화되는 과정을 파악한다"고 했다. 관련 집필 기준은 '6·25전쟁과 남북 분단의 고착화'를 소주제로 설정하고 '반공주의와 독재'를 학습 요소의 하나로 제시했다.

이 부분도 이전 집필 기준과 큰 차이가 있다. 2009년 집필 기준은 "6·25전쟁의 개전(開戰)에 있어서 북한의 불법 남침을 명확히 밝힌다"고 했다. 2007년 집필 기준도 "6·25전쟁이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됐다는 사실을 명확히 한다"고 했다.

'북한의 남침'을 명시하지 않고 '분단 고착화'의 원인으로 '반공주의'를 강조하면 분단 지속의 책임을 남한에 돌릴 가능성이 있다. '분단 체제론'를 주창한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국 사회의 이면(裏面) 헌법인 '반공반북(反共反北) 의식'을 폐기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새 교과서 시안은 결론 부분에서 분단 극복을 위한 '남북 화해' '평화통일'을 부각한다. 교육과정에는 "남북 관계가 대립과 갈등 속에서도 화해와 협력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 및 평화 통일의 중요성을 인식한다"고 했고, 집필 기준에서도 '남북 화해와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노력'을 마지막 소주제로 설정하고 평화통일 노력, 남북 정상회담을 학습 요소로 제시했다. 그러나 이전의 집필 기준에 들어 있던 '수령 유일, 세습 체제' '인권 억압' 등 북한 내부 문제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정경희 영산대 교수는 "새 교육과정과 집필 기준은 작성에 참여한 사람들이 지향하는 특정 사관에 사실을 꿰맞춘 것"이라며 "특히 마지막 부분은 역사책이 다루기에 적합하지 않은 내용으로 그들의 지향점과 목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07/201802070038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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