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 부품·마약 밀수 정황도 드러났던 배… '北선박 입항 금지' 5·24 조치와 정면 충돌]

'판문점→경의선 육로→만경봉호' 北, 예술단 訪南 경로 일방 교체
정부는 北 요구부터 수용한 뒤 美와는 '벼락치기 논의' 논란
5·24 조치 예외 적용하더라도 안보리 제재 위반 소지 남아
 

북한이 만경봉호에 예술단을 태워 보내겠다는 방침을 예술단 방한 이틀 전에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허물고, 한·미를 이간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

하지만 정부는 미국 등과 충분한 사전 조율 없이 북한의 요구를 수용한 뒤 '뒷수습'을 하는 모양새를 되풀이하면서 논란을 키우고 있다.

◇北 "숙식 편리 위해 만경봉호 이용"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5일 "북측이 강릉 공연 기간 동안 숙식의 편리를 위해서 만경봉호 이동(계획)을 알려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 예술단의 강릉 공연 일정은 지난달 15일 남북 실무 접촉 때 정해졌고, 당시 북한은 "판문점 육로로 가겠다"고 했다. 이후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 일행이 공연·숙박 시설 점검차 같은 달 21~22일 강릉·서울을 다녀갔다. '숙식의 편의성' 때문이라면 늦어도 이때 만경봉호 얘기가 나왔어야 한다. 하지만 같은 달 23일 밤 북한은 판문점 대신 "경의선 육로로 가겠다"고 했을 뿐 만경봉호나 해로(海路)를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 만경봉호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 북측 응원단을 태우고 부산 다대포항에 입항한 모습.
北예술단 본진이 탈 만경봉호 -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할 예술단(삼지연관현악단) 본진을 6일 만경봉호로 보내겠다고 통보했다. 5·24 조치 및 독자 대북 제재를 위반하는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사진은 북한 만경봉호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 북측 응원단을 태우고 부산 다대포항에 입항한 모습. /연합뉴스
 
북한 예술단 선발대 23명이 5일 악기·장비 등을 들고 경의선 육로를 통해 경기 파주시 남북출입국사무소로 들어온 뒤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北선발대, 옷·모자·가방 '통일' - 북한 예술단 선발대 23명이 5일 악기·장비 등을 들고 경의선 육로를 통해 경기 파주시 남북출입국사무소로 들어온 뒤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만경봉호 이용을 통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허물겠다는 의도를 노골화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외교 소식통은 "유엔 안보리를 비롯해 국제사회 대북 제재의 골간을 이루는 것이 금융 제재와 해운 제재"라며 "만경봉호 투입은 한국을 이용해 해운 제재를 허물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이 제재 위반의 선례를 남길 경우 현재 대북 제재에 마지못해 동참 중인 중국·러시아도 제재 불이행에 대한 부담을 덜게 되고, 이는 자연스럽게 대북 제재 이완으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만경봉호, 어떤 제재 걸리나

만경봉호가 국내에 입항할 경우 우리 정부가 2010년 천안함 폭침 이후 선언한 5·24 조치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2016년 우리 정부의 독자 대북 제재와도 충돌한다. 이에 통일부는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제재의 예외로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 정부가 예외를 적용한다 해도 유엔 안보리 제재 위반 소지가 있다. 만경봉호는 안보리 제재의 직접 대상인 블랙리스트에는 올라 있지 않다. 하지만 안보리 결의에는 제재 대상으로 지정된 개인·단체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소유·통제되거나 불법 활동 연루가 의심되는 선박 등에 대해 회원국 입항을 금지하는 조항이 있다. 또 국내에 입항해 있는 동안 기름 등 정유 제품이나 식료품 공급이 이뤄지면 유엔 제재 위반에 해당한다. 입항시키기 전에 관련국들과의 긴밀한 협의가 필요한 것이다.
 
만경봉호 한국 입항, 대북 제재 위반 논란
만경봉호의 지난 행적도 걸림돌이다. 북한 공작원들의 거점이었던 만경봉호는 2006년 1차 핵실험으로 일본 입항을 금지당할 때까지 미사일 부품 운반, 마약 밀수, 불법 송금에도 연루된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옛 만경봉호(1972년 취항)도 러시아에서 입항이 불허된 적이 있다. 전직 청와대 관리는 "우리 영해로 들어오는 만경봉호는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구상'(PSI)에 따른 정선(停船)· 검색 대상으로 볼 여지가 있다"며 "미국도 만경봉호를 주시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 정부는 미국 주도의 PSI (105개국 참여)에 2009년부터 동참하고 있다.

◇벼락치기 하듯 美와 제재 논의

정부는 지금까지 남북 관계 개선을 명분으로 북한의 '제재 무력화 전술'을 받아들인 뒤 뒤늦게 제재 위반 논란을 피하기 위해 진땀을 빼는 모습을 보여왔다. 최근 문제가 된 '마식령스키장 전세기'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비행기 이륙을 2시간 앞두고 미국 재무부의 최종 '승인 사인'이 떨어질 때까지 가슴을 졸여야 했 다.

만경봉호 입항 문제에서도 북한의 통보가 4일 밤에 이뤄졌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미국과 논의할 여유는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도 이 같은 점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한국 정부가 북한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준 뒤 미국에 '한 번만 봐 달라'고 부탁하는 모습이 되풀이되고 있다"며 "미국은 한국의 제재 의지를 의심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06/201802060017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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