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국 대사로 내정됐던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가 낙마했다. 한국 정부의 아그레망(임명 동의)까지 받은 미 대사 내정자가 바뀌는 건 전례를 찾기 어렵다. 문제는 그 이유다. 워싱턴포스트(WP)는 30일 "빅터 차가 북한에 제한적 타격을 가하는 이른바 '코피(bloody nose) 전략'을 놓고 백악관에 우려를 제기했고, 한·미 FTA 폐기 위협에도 반대했다"고 했다.

실제 빅터 차는 낙마 보도가 나온 직후 이 신문에 '제한적 타격이라도 김정은의 군사 보복을 불러올 수 있다'는 기고문을 보냈다. "23만명에 달하는 한국 거주 미국인을 일시에 대피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도 했다. 북핵 해법으로 대북 제재를 강조해온 빅터 차는 워싱턴에서 대북 강경파로 꼽힌다. 그런 그가 대북 정책 이견으로 낙마했다면 트럼프 행정부가 생각하고 있는 대북 정책이 무엇일지 짐작이 어렵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30일 첫 국정 연설에서 "북의 무모한 핵무기 추구가 미 본토를 곧 위협할 수 있다"며 '최대 압박'을 공언했다. 트럼프는 북에서 한쪽 팔과 다리를 잃은 채 탈북한 지성호씨와 북에 억류됐다 사망한 미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가족들을 초청해 북한 정권의 만행을 부각시켰다. 트럼프는 작년 4월 화학무기를 사용한 시리아에 대해 인권 문제를 앞세우고 폭격한 적이 있다. 블레어 전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30일 미 상원 한반도 관련 청문회에서 "북이 추가 도발할 경우 제한적 보복 타격으로 응수해야 한다"고 했다. 폼페이오 CIA 국장도 29일 BBC 방송에서 "북핵 위기를 비(非)외교적 수단으로 줄이는 방법에 관한 정보를 대통령에게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평창올림픽 개막이 9일 앞으로 다가온 지금 미국은 이미 '평창 이후'를 바라보고 있다. 대북 제재 전열을 흐트러뜨리려는 북의 속셈을 간파하고 있다. 김정은은 이 수(手)가 통하지 않으면 도발을 통해 상황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과거 미국 정부는 협상을 택했지만 트럼프는 그렇지 않을 것 같다. 빅터 차 내정자의 낙마가 이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대북 군사 조치는 그야말로 다른 수단이 없을 때만 검토될 수 있다. 지금은 대북 제재가 막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제재의 구멍인 중국이 북한 내 자국 기업들을 철수시키고 있고, 러시아도 2019년까지 벌목공 등 북한 노동자 수만 명을 전원 귀국시킬 것이라고 했다. 중국과 러시아를 더 설득하고 압박해 대북 제재망을 더 촘촘하게, 더 강력하게 짜서 김정은을 완전히 봉쇄 차단해야 한다. 이것이 군사 충돌 위험 없이 북핵을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남은 방법이다.

정부가 이 상황에서 대북 대화 통로를 열고 유지하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다만 대북 제재를 훼손할 수 있는 어떤 행동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도 미국 독자 제재 위반임을 알면서도 31일 김정은 치적이라는 마식령스키장에 아시아나 전세기를 보냈다. 미국은 전세기 출발 2시간 전에야 동의했다. 명백한 불만의 표시다. 이런 '예외'가 반복되면 어렵게 쌓은 대북 제재의 벽은 어느 순간 무너질 수 있다. 제재가 실패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카드를 꺼내 들지는 정부도 알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31/20180131033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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