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대로 내달 4일 금강산 공연이 열렸다면 통일부는 여기에 필요한 발전용 경유 1만리터가량을 북한으로 보낼 계획이었다. 평창올림픽 관련 북측 지역 행사는 북이 편의를 제공하기로 합의했지만 북은 '전기와 무대 장비까지 모두 남측이 해결하라'고 요구했고 정부는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북에 경유를 보내는 것은 미국의 대북 제재에 어긋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8월 북에 원유·경유 등 유류(油類)를 제공하는 어떤 주체도 제재할 수 있는 '적성국 대응법'에 서명했다. 미국의 동의를 받지 못하면 한국이 이 법상 제재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지금 대북 제재의 핵심은 북으로 들어가는 유류 차단이다. 트럼프는 시진핑 주석을 만날 때마다 '대북 원유 차단'을 요구해왔다. 작년 말 유엔 안보리는 제재 결의안 2397호를 통해 대북 정제유 공급량을 연간 50만 배럴로 줄였다. 북이 수입하던 정제유의 90%를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이 추가 독자 제재안을 발표하면서 북 원유공업성과 선박 6척을 포함한 것도 유류 북한 반입을 최대한 틀어막겠다는 뜻이다.

금강산 행사는 북이 벌이려던 쇼다. 29일 밤 갑자기 취소를 통보했지만 북 정권 입장에서 심혈을 기울인 행사일 텐데도 기름이 없어 전기 공급도 못 할 뻔했다. 북의 이 현실은 유류 차단을 겨냥한 대북 제재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증거다. 작년 12월 북한의 대중(對中) 수출액은 5400만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81.6% 감소했다. 북 무역의 90%가 중국임을 감안할 때 월수입이 5분의 1로 줄어든 셈이다. '돈줄'이 마르면 김정은 지지 기반인 평양 특권층부터 비명을 지르게 된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최악의 난관' '생존 위협'을 언급한 것은 이 고백이다. 바로 여기에 북핵 해결이란 난제를 풀 열쇠가 있다.

당연히 북은 제재를 무너뜨리려 몸부림치고 있다. 첫 대상이 한국 정부이고 그 수단이 평창올림픽이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올림픽 경기와 관련도 없는 금강산 공연에 경유를 보낸다고 한다. 그 양은 매우 적지만 유류 차단이라는 핵심 대북 제재를 우리 스스로 훼손하는 상징성이 문제다. 중·러 등이 '우리도 예외를 인정해 달라'고 나올 수 있다.

북핵은 대화와 협상으로 없애야 한다. 한때는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대북 제재의 효과로 군사 충돌 없이 북핵을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이 조금씩 자라고 있다. 정부는 대북 제재를 훼손하지 말고 오히려 더 강화시켜야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29/201801290294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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