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반디 '고발'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작년 미국에서 시작된, 유력자 남성들에게 성적으로 농락당한 여성들의 고발, 증언의 물결은 하비 와인스틴이라는 막강한 할리우드의 제작자를 몰락시켰고 연방상원의원 한 명을 사임시켰으며 유력한 상원의원 후보를 낙선시켰다. 미국 체조 국가대표 선수팀 주치의였던 래리 나사르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비롯한 선수 156명의 증언에 의거하여 이미 선고받은 60년 징역에 175년이 추가되었다.

미국을 뒤흔든 이 운동으로 우월적 지위자에 의한 성적인 추행이 근절될지는 모르겠지만 성추행에 대한 인식과 대응이 획기적으로 달라질 것은 분명하다. 이 운동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어쩐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안보 위기가 워낙 막중한 데다 일자리 실종, 교육 파탄 등 나라 상황이 너무 급박하기 때문인 듯하다.

우리나라도 딱하지만 북한 여성의 처지를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진다. DJ 정부 시절, 공영방송 KBS는 매주 북한선전, 찬양 프로그램을 방영했었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에 등장한 북한 여성들은 하나같이 애교가 넘쳤다. 이는 북한 여성들이 천성적으로 나긋나긋해서가 아니고 실권을 쥐고 있는 남성에게 뻣뻣하게 보였다가는 어떤 벼락을 맞을지 모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나라가 빈곤하면 제일 비참해지는 것이 여성이다. 남자가 체면상 할 수 없는 구저분한 일을 도맡아 하고 가족 중에서 제일 못 먹는 사람은 어머니다. 극심한 빈곤이 아니라도 억압 구조 속의 여성은 말 못 할 마음고생을 견뎌야 한다. 재북 작가 반디의 단편소설집 '고발'의 첫 단편에서는 한 새댁이 출신 성분에 약점이 있는 남편 때문에 당비서의 치사하고 집요한 접근을 단호히 물리치지도 못하고 가까스로 견제하면서 남편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고 애간장이 탄다.

북한 권력 집단의 가장 악랄한 범죄 중의 하나가 '기쁨조'라는 성노예 조직의 운영이다. 기쁨조가 호의호식하고 개중에는 출세까지 한다 해서 일본군위안부보다 '인도적'인가? 오히려 더 사악하다. 북한에서 채홍사의 소집을 거부하고 온전할 수 있는 여성이 있을까? 현송월은 지금 여왕 대접을 받지만 김씨 왕조가 몰락하는 날엔 그도 광장에 버려질 것이다. 그때 북한 민중이 '예뻐요!'라고 환호하면서 앞다투어 카메라를 눌러댈까?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29/201801290293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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