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 혈서(血書)를 쓰는 북한군 간부가 속출했다고 한다. 김일성이 생전에 강조했다는 '조국 통일'을 피로 쓰며 충성심을 강조하려는 '집단 쇼'였다. 충성 경쟁을 하지 않으면 실제 목이 달아나는 체제니 그럴 만도 하다. 집단적 광기가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까지 있었다.

▶일본 도쿄의 간다묘진(神田明神) 신사에선 정월이면 속옷만 입고 냉수를 끼얹는 '세신(洗身) 의식'을 치른다. 묵은해의 몸과 마음을 정화(淨化)한다는 뜻이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로 끌려가 욕을 당한 조선 여성들은 귀국길에 서울 홍제천에서 몸을 씻어야 했다. 과거를 지우고 새 출발 한다는 뜻이었다. 그녀들을 지켜주지 못한 나라가 군사력을 키운 게 아니라 고작 그런 쇼나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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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구 국군기무사령관과 서울 지역 기무부대원 600여 명이 25일 국립현충원에서 '세심(洗心) 의식'이란 걸 했다고 한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고강도 개혁을 추진하겠다며 영하 15도 날씨에 차례로 청계산 물에 손을 씻고서 흰 장갑을 꼈다. 이 물은 호국 영령이 잠든 현충원에서 기무사령부로 흐르는 물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같은 시각 전국 모든 기무부대도 각 지역 충혼탑 앞에서 비슷한 맹세를 했다.

▶평창올림픽 개막이 2주 앞이지만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 미국에선 연일 '전쟁' '군사 옵션' 같은 말이 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말처럼 '6·25 이후 최악 위기'인데도 우리 군은 스스로 육군 병력 12만명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안보 상황과 완전히 거꾸로 간다. 제대로 된 군대라면 내부에서 '이래도 되느냐'는 우려가 나와 이 흐름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우리 군은 조용하다고 한다.

▶기무사는 전 정부 시절 자체 댓글 부대를 조직해 정치 댓글을 쓴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북한의 인터넷 공작에 대비해야 하지만 국내 정치 관련 댓글을 단 것은 잘못된 일로 근절해야 한다. 하지만 국민이 무엇보다 군에 바라는 것은 나라를 튼튼히 지켜달라는 것이다. 북핵 위기 로 당장 몇 달 뒤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군 병력을 충격적일 정도로 줄인다는데 모두 수수방관이다. 이런 군이 물에 손 씻는 쇼는 정치인들 뺨치게 한다. 기왕 쇼할 거면 아예 벌거벗고 얼음물에 뛰어들지 그랬느냐는 비아냥도 나온다. 이런 군대가 유사시에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킬 수 있나. 이제 '쇼통'도 모자라 '쇼군(쇼하는 군대)'까지 봐야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26/20180126029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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