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에선 美·中 관계를 병자호란 明·淸 교체기에 비유
중국은 30년 뒤 초고령 사회지만 美는 그때도 젊고 역동적인 나라
양국 사이에서 '널뛰기'하면 어느 한 쪽서도 신뢰받을 수 없어
 

윤덕민 한국외대 석좌교수·前 국립외교원장
윤덕민 한국외대 석좌교수·前 국립외교원장

투키디데스가 쓴 '펠레폰네소스전쟁사(史)'에서 도시 국가 아테네는 대화로 문제를 풀고자 하는 소국(小國) 멜로스를 향해 '정의(正義)란 대등한 국가 간에나 통하는 것이지 大國(대국)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소국은 순응해야 한다'고 최후통첩한다.

강대국 정치의 본질인 힘의 논리이다. 이 말이 요즘처럼 실감 난 적이 있을까? 방어 무기 배치인 사드에 경제 보복을 하고, 최고의 손님맞이 문화를 갖고 있는 나라가 국빈(國賓) 방문한 우리 대통령을 혼밥(혼자 먹는 밥)으로 홀대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강대국 마음대로 약소국을 주무르던 강대국 정치와 제국주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패권을 쥔 미국은 법과 제도에 입각한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모색했다. 독일 나치와 일본 군국주의를 전범(戰犯)으로 처벌하고 유엔·국제사법재판소 같은 국제기구를 창설했다. 자유무역 질서와 자유항행 원칙도 확립됐다. 힘이 우선시돼온 국제 관계에서 국제법과 제도가 작동하는 질서로의 전환이었다. 덕분에 중국·일본·러시아라는 초강대국에 둘러싸인 한국에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 오늘날 한국이 누리는 평화와 번영은 미국이 주도한 전후 국제 질서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런데 이 국제 질서가 최근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 작년 가을 19차 공산당 대회를 계기로 중국은 2050년까지 미국을 제치겠다는 패권 도전장을 던졌다. 중국은 군사력 강화와 함께 유라시아를 공략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으로 이를 노골화하고 있다. 미국은 이에 맞서 최근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서(NSS)'에서 중국을 사실상 적국인 경쟁국으로 공식 지칭했다. 여기에 일본과 러시아까지 가세해 한반도 주변은 19세기 말~20세기 초의 강대국 정치의 부활을 연상케 한다.
/Getty Images 멀티비츠

우리 사회 일각에는 요즘 국제 정세를 병자호란의 명·청(明·淸) 교체기와 같은 패권 교체기로 보면서 중국을 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현 정부는 미국의 구상에는 소위 '3불(不)'로 참여할 의사가 없다고 거부하면서 우리를 작은 봉우리로 비유하고 중국몽(中國夢)과 '일대일로'를 같이 하는 운명 공동체로 자리매김했다. 과거 중화 질서에서와 같은 조공(朝貢) 관계 복원이 우리가 원하는 종착점인가?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 직후 세계은행은 2019년 중국 경제가 미국을 앞지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 예상은 빗나갔다. 최근 대다수 보고서는 2030년에도 역전은 불가능하다고 보며, 일부만 2050년쯤으로 추정한다. 국제정치에서 30년 후를 예상하는 것은 '신(神)의 영역'이다. 미국 주도권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20세기 들어 독일·일본의 군국주의 도전, 소련과의 냉전 대결 그리고 일본 경제의 도전까지 세 차례의 도전을 이겨냈다. 중국의 도전도 물리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시가총액 최상위 기업들은 구글·페이스북·애플·마이크로소프트 등 창의적 아이디어로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부(富)를 창출하는 곳들이다. 애플의 아이폰은 '메이드 인 차이나'지만 수출 가격 600달러 중 중국 이익은 현지 근로자들이 얻는 6달러75센트가 전부다. 150달러는 한국·일본의 부품 업계 몫이며 나머지는 모두 애플의 몫이다. 이것이 글로벌 경제의 현실이다.

중국의 사드 보복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한·중 교역은 14% 늘었다. 한·중 관계는 우리가 중국에 종속된 게 아니라 중국이 우리 중간재를 필요로 하는 상호 의존 관계이다. 중국도 우리 중간재를 수입·가공해야 자국 제품을 미국에 수출할 수 있다. 결국 우리의 죽고 사는 문제와 먹고 사는 문제 모두 사실상 미국에 달려 있다. 미국의 다른 강력한 힘은 인구 구조다. 2050년 중국은 초고령화 사회가 돼 인구가 줄지만, 미국 인구는 현재 3억에서 4억5000만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30년 뒤에도 미국은 세계에서 여전히 젊고 역동적인 나라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韓·美) 동맹의 진정한 가치를 새롭게 평가해야 한다. 한·미 동맹은 지난 6 5년간 우리 번영과 안전의 핵심 축이었고 여전히 사활적 중요성을 갖는다. 당장 현실로 다가온 북한 핵·미사일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있는 변변한 방어 수단도 없는 현실에서 동맹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한·미 동맹이 굳건해야 중국도 우리를 무시하지 못한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널뛰기하는 나라는 어느 한 쪽으로부터도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23/201801230327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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