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미국 사는 친구 전화를 받았다. "정현이 누구야? CNN에 종일 나오네. 한국 뉴스라면 매일 북핵 아니면 평창올림픽에 온다는 북한 사람들 이야기뿐이더니…." 국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정현이 무결점 플레이로 유명한 세계 테니스 전 랭킹 1위 조코비치를 이긴 이야기는 세계를 놀라게 한 화제였다. 엄동설한인데 테니스 배우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고 한다.

▶사람들은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정현이 조코비치를 이긴 것하고 2002년 월드컵 축구 4강에 오른 것하고 어느 게 더 어려운 건가?" 사회적 영향력과 파급효과를 따지면 수백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4강 신화에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그렇지만 승패 확률을 따져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세계 랭킹 58위 정현은 1회전에서 35위, 2회전에서 65위, 3회전에서 4위, 4회전에서 14위를 이겼다. 1대1로 3시간 넘게 혈투를 벌이는 테니스는 이변이 가장 적은 스포츠로 꼽힌다. 
 
[만물상] 정현·조코비치 둘 다 멋지다

▶남반구 도시 멜버른에서 2주일간 열리는 호주오픈은 '1월의 스포츠 축제'로 불린다. 북반구가 얼어붙은 시점에 열려 더 뜨거운 주목을 받는다. 매년 70만명 이상이 직접 관람한다. 엄청난 돈 잔치도 벌어진다. 남녀 단식 우승 상금 400만 호주달러(약 34억원)에 총상금 5500만 호주달러(약 471억원)다. 남자 골프 최다 상금 대회인 US오픈(1200만달러)을 압도한다.

▶테니스는 매너 스포츠다. 경기가 끝난 후 정현은 "조코비치는 나의 우상이었다"고 했다. 조코비치는 취재진이 팔꿈치 부상에 대해 묻자 "오늘 내 부상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정현의 승리를 깎아내리는 행위"라고 했다. 둘 다 멋지다. 조코비치는 지난해 후반기 6개월 동안 오른 팔꿈치 부상으로 코트에 서지 못했다. 세르비아 출신인 그는 1990년대 내전으로 폭격이 끊이지 않던 상황에서 물 뺀 수영장에서 훈련하며 세계 최고 스타로 성장했다.

▶정현은 어디까지 올라갈까. 테니스는 '폭발형 성장 그래프'를 그린다. 정체와 답보가 지속되다 어느 순간 폭발하듯 실력이 느는 운동이다. 정현은 고수들과 대결하면서 상대의 능력을 흡수하는 모습이다. 한국 선수가 조코비치나 페더러, 나달을 이기는 건 상상에서나 가능했다. 한 팬은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는데 실감이 안 난다"고 했다. 정치에 자리를 뺏겼던 스포츠가 여드름투성이 스물두 살 청년 덕분에 즐겁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23/201801230327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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