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D-18]

갑자기 카톡 프로필 사진 바꿔… 단일팀에 복잡한 심경 드러내
할말 하는 외유내강형… NHL감독 출신 앤디 머리가 아버지
北선수 투입 방법 고민… 경기당 3명 마지막 라인 맡길 가능성
 

세라 머리(30)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감독은 남북 단일팀 관련 IOC(국제올림픽위원회) 회의가 열린 20일, 자기 카카오톡 프로필 배경 사진을 갑자기 바꿨다. 늑대들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늑대들 밑에 모두 'KOREA(한국)'가 적혀 있었다. 머리 감독은 사진 맨 위에 '우리는 맹수인가, 아니면 먹이인가?(Are we predators or are we prey)'라는 글을 남겼다. 남북 단일팀 문제를 바라보는 머리 감독의 복잡한 심경을 엿볼 수 있는 대목으로 해석된다.
 
머리 감독이 20일 자기 카카오톡 프로필에 올린 새로운 배경 사진.
머리 감독이 20일 자기 카카오톡 프로필에 올린 새로운 배경 사진. ‘우리는 맹수인가, 먹이인가?(Are we predators or are we prey)’라는 제목을 적고, 사진 속 늑대엔‘KOREA’라고 붙여놓았다. 선수들을 늑대처럼 길러 왔는데 남북 단일팀으로 상황이 변한 것에 대한 복잡한 심정을 담은 듯하다. /세라 머리 카카오톡

'남북 단일팀 소용돌이'에 휘말린 머리 감독은 요즘 외부 접촉을 끊고 두문불출하고 있다. 미국 CNN, 캐나다 CBC 등 전 세계 언론의 인터뷰 요청도 모두 거절하고 있다. 한 달 전만 해도 해외 언론의 관심 밖이었던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20일 IOC의 남북 단일팀 결정 이후부터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가장 주목받는 팀이 됐다. 그 중심엔 남북 단일팀의 '선수 기용'을 전적으로 책임질 머리 감독이 있다.

◇초보 감독으로 부임… 할 말은 하는 스타일

머리 감독은 지난 2014년 9월 캐나다 교포 출신인 백지선(51)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감독의 추천으로 여자 대표팀 사령탑에 올랐다. 당시 나이 26세로 파격적 선임이었다. 선수 시절엔 미네소타 덜루스대(2006~2010·미국) 등에서 수비수로 활약했던 머리 감독은 대표팀(미국·캐나다 이중 국적)에서 뛴 경험이 없다. 이후 스위스 리그에서도 한동안 뛰다가 2014년 은퇴한 그는 감독 경험도 전무했다.

그럼에도 백지선 감독이 그를 강력 추천한 배경엔 전 캐나다 아이스하키 남자 대표팀 감독이자 전 NHL(북미아이스하키리그) 감독인 앤디 머리 감독이 있었다. 세라의 아버지인 앤디 머리는 NHL에서 LA 킹스와 세인트루이스 블루스 사령탑(10시즌)을 지낸 명장으로 유명하다. 당시 백 감독은 대한아이스하키협회 요청으로 여자 대표팀 감독을 수소문한 끝에, 평소 친분이 있었던 앤디 머리에게 딸 세라 머리를 추천받았다고 한다. 대표팀 관계자는 "머리 감독 부임이 결정됐을 때만 해도 '20대 중반 여자 외국인 감독이 뭘 하겠냐'는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고 했다.
 
세라 머리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감독이 지난 16일 미국 전지훈련을 마치고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자리에서 질문을 들으며 생각에 잠긴 모습.
세라 머리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감독이 지난 16일 미국 전지훈련을 마치고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자리에서 질문을 들으며 생각에 잠긴 모습. 감독은 35명으로 늘어난 남북 선수단을 지도해야 하고, 경기당 3명의 북한 선수를 출전시키면서도 경기력을 유지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연합뉴스

하지만 그는 부임하자마자 선수단을 장악했다. 그는 선수단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나보다 나이가 많은 선수가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감독 말에는 예외 없이 모두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아이스하키협회를 상대로도 지원이 부족한 부분을 적극적으로 말해 왔다. 그는 부임 초 거의 매일 미국 미네소타에 있는 아버지와 한 시간 이상 통화해 조언을 들으며 자신의 부족한 경험을 메웠다.

똑 부러지는 그의 성격은 지난 16일 기자회견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당시 머리 감독은 미국 전지훈련을 마치고 인천공항으로 귀국한 자리에서 "북한 선수 3명 정도는 괜찮겠지만(Okay), 선수 10명을 추가하는 건 정말 어렵다(very difficult)"고 말했다. "나는 (북한 선수를 기용하라는) 압박을 받지 않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올림픽 최적의 시나리오는?

머리 감독은 18일 앞으로 다가온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북한 선수들을 어떤 방식으로 경기에 투입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20일 IOC 주재로 열린 '남북 올림픽 참가 회의'를 통해 결정된 것은 두 가지다. 한국 여자 대표팀 23명에 북한 선수 12명이 합류해 남북 단일팀 규모가 총 35명이 된다는 것과, 북한 선수를 경기당 3명은 출전시킨다는 것이다. '경기 출전 엔트리'는 22명으로 정해진 만큼 우리 선수 중 일부는 빠져야만 한다.

함께 훈련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그나마 최적 시나리오는 뭘까. 한 대학 아이스하키 감독은 "경기당 투입되는 북한 선수 3명에게 대표팀의 마지막 라인인 4라인을 맡기는 것이 현실적 방안이 될 것"이라고 했다. 아이스하키는 주전·후보 구분이 따로 없어서 5명씩 네 라인이 번갈아 얼음판에 나선다. 북한 공격수 3명 또는 수비수 2명에게 한 라인을 책임지게 하면 북한 선수들에게 출전 기회를 보장하는 것은 물론, 호흡 문제에 대한 부담을 어느 정도 덜 수 있다. 다만 그들이 크게 실점하거나 약점을 보일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대표팀 관계자는 "머리 감독에게는 고문과도 같은 상황이 됐다. 북한 선수들의 출전 시간이 극히 적을 경우 여러 얘기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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