歸化선수 영입·12년 후보 생활… 힘들게 탄생한 女아이스하키팀
단일팀 추진에 '희생양' 전락… 올림픽에 대한 냉소만 불러
 

김동석 스포츠부장
김동석 스포츠부장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추진 소식이 전해지면서 인터넷이 며칠 새 정부 성토장으로 변했다. "선수들이 너무 원통한 일을 당하고 있다" "세상에 이런 단일팀이 어디 있나" "이런 단일팀이라면 관전 보이콧하자"는 화난 목소리가 난무한다. 단일팀 추진은 인권침해라며 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넣은 팬이 나왔고, 단일팀에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6일 만에 1만명을 훌쩍 넘겼다.

유승민 IOC 선수위원은 "최소한 선수들 의사는 먼저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고, 세라 머리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팀 감독은 "이렇게 임박해서 단일팀 이야기가 나온 데 매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오랜만에 사회적 의견 일치를 본 분야가 이번 단일팀 논란 같다. 남녀노소는 물론 선수도 감독도 팬들도 원하지 않는 단일팀이라는 얘기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최종 결론은 오는 20일 IOC가 남북 당국과 합의해 내리게 돼 있다. 하지만 이번 단일팀은 처음부터 역풍 맞기 딱 좋았다. 그동안 정부는 물밑에서 단일팀 구성 논의를 진행해 왔지만 당사자인 우리 선수들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정부 측에서 아이스하키협회에 '우리 선수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방안이 뭐냐'고 물어본 게 지난 주말 일이라고 한다. 지난해 6월 처음 단일팀 이야기를 꺼냈다가 여론의 된서리를 맞더니, 7개월간 뭘 하다 이제야 그런 검토를 다시 하는 건지 궁금하다.
2017년 12월 7일 충북 진천선수촌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여자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청백팀으로 나누어 훈련을 하고 있다. /이진한 기자
한국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우여곡절 끝에 구성됐다.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가 평창으로 결정된 이후에도 국제아이스하키연맹은 한국 여자팀에 '올림픽 개최국 자동 출전권'을 주지 않으려고 했다. 평소 아시아권 팀에도 10점 이상 차로 대패하는 한국을 덜컥 출전시켰다가 종목 자체를 웃음거리로 만들까 두려웠던 탓이다. 한국은 협회 직원이 미국 대학 선수 명단을 갖다 놓고 'KIM' 'LEE' 'PARK' 등이 들어간 선수들에게 무작정 이메일을 보내 "혹시 한국계냐. 귀화해서 뛸 생각 없느냐"고 권하는 맨땅에 헤딩 방식으로 선수들을 모았다. 그렇게 귀화시킨 선수들이 지금 팀 핵심 전력인 박은정(캐럴라인 박), 랜디 희수 그리핀, 임진경(대넬 임) 등이다. 골키퍼 한도희는 12년째 후보 신세이지만 올림픽을 향한 집념 하나로 스틱을 들고 있다. 이들은 최저 생계비 수준의 훈련비를 받으며 꿈을 좇아왔다.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은 스포츠계에서 힘도 발언권도 없는 '을(乙) 중의 을'이다. 남북 평화와 화해라는 거대 명분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면 을들의 소망은 깔아뭉개도 되는가. 우리 선수들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비정(非情)의 단일팀'에 국민이 갈채를 보내긴 할까.

역대 단일팀이 감동적이었던 건 남북이 힘을 합해 엄청난 시너지를 냈기 때문이다. 남의 현정화와 북의 이분희가 합심해 중국을 넘고 우승까지 차지했던 1991년의 세계탁구선수권 단일팀, 비슷한 전력의 남북 청소년들이 8강 진출을 이룩한 세계청소년 축구 선수권 단일팀이 그 경우였다. 이번 아이스하키 단일팀은 전력부터 불균형인 데다, 함께 훈련할 시간도 없다. 현재 한국의 전력이 10점이라면 단일팀은 좋게 봐서 7~8점 수준이나 될 것이다. '남북이 힘을 합하면 일을 망친다'는 고약한 사례나 만들게 될 수도 있다.

평창올림픽은 북한의 참가 결정으로 일정한 성과를 얻었다. 거기서 멈춰야 했다. 무리하게 추진한 단일팀은 사람들의 냉소만 불렀다. 간신히 살아나려던 올림픽 열기(熱氣)에 정부가 앞장서 찬물을 뿌린 격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17/201801170308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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