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北 실무접촉, 관현악단 공연 합의… 北 "육로로 가겠다"]

오케스트라 80명·가무 60명, 北 "민요·세계 명곡 등 연주"
현송월이 악단 이끌고 올 가능성
들고온 핸드백 2500만원 명품說… 에르메스 측 "우리 제품 아닌 듯"
 

15일 저녁 7시 남북 실무 접촉이 열린 판문점 북측 통일각. 종결회의 직전 북측 수석대표인 권혁봉 문화성 예술공연운영국장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옆자리에 앉은 여성에게 존칭을 쓰며 깍듯한 태도로 뭔가를 물었다. 이 여성은 '김정은의 옛 애인'이라는 설(說)이 있는 현송월 모란봉악단 단장이었다. 현송월이 남북대화 무대 전면에 등장한 것은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정부 소식통은 "현송월이 '실세'임이 회담 내내 여러 차례 드러났다"고 했다.

존재감 과시한 현송월

'관현악단 단장'이란 타이틀로 나온 현송월은 남색 정장 차림이었다. 상의 앞섶에 김일성·김정일 배지를 달았다. 우리 대표단을 맞이할 때 현송월은 엷은 미소와 눈웃음을 지었다. 그와 인사한 통일부 관계자는 "여유와 당당함이 느껴졌다"고 했다.

검은색 하이힐을 신은 현송월은 초록색 핸드백과 갈색 서류철을 들고 회담장으로 이동했다. 이날 접촉에 참여한 우리 측 대표는 "권혁봉과 현송월은 거의 공평하게 발언했다"고 전했다. 통상 남북대화가 수석대표(대표단장) 발언 위주로 진행되는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이날 현송월은 아이라인을 진하게 그렸다. 머리는 반만 묶어 뒤로 풀어 내렸다. 평양 출신의 탈북 여성 이나경씨는 "현송월 헤어스타일은 예술단 규정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현송월이 든 핸드백에 대해선 "2500만원짜리 프랑스 명품 에르메스 제품"이라는 의견이 있었으나 해당 업체는 "우리 제품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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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개월만에 모습 드러낸 현송월 - 현송월 북한 모란봉악단장이 15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열린 남북 실무 접촉에 참석하고 있다(왼쪽 사진). 현송월은 지난 2015년 12월 10일 공연을 위해 중국 베이징역에 내리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오른쪽 위 사진). 일부 전문가는 이날 현송월이 든 핸드백에 대해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 제품이며 판매가는 2500만원 정도”라고 했지만 해당 업체는 “우리 브랜드는 아닌 걸로 보인다”고 했다(오른쪽 아래 사진). /통일부

현송월은 김정일 시대의 대표적 예술단인 '보천보 전자악단' 가수 출신이다. 김정은의 옛 애인이라는 설이 있지만 확인되지는 않았다. 현송월은 2014년 5월 전국예술인대회 때 대좌(대령) 계급장의 군복 차림으로 등장했다. 작년 10월 당 중앙위원회 제7기 2차 전원회의에선 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발탁됐다. 현송월은 2015년 12월 '베이징 회군'으로 김정은의 두터운 신임을 받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현송월은 중국 측이 모란봉악단 공연 무대 배경에 핵 미사일이 등장하는 것을 문제 삼자 "원수님(김정은)의 작품은 점 하나 뺄 수 없다"며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北 예술단 판문점 찍고 KTX 탄다

남북은 이날 실무 접촉에서 5개 항의 '공동 보도문'에 합의했다. 평창올림픽 기간 140명 규모의 '삼지연 관현악단'이 서울과 강릉에서 공연한다는 게 요지다. 이에 앞서 선발대 성격의 '사전 점검단'이 먼저 한국에 내려올 예정이다.

우리 측 대표로 이날 접촉에 참여한 정치용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은 "북측 오케스트라 규모는 한 80명, 그리고 노래와 춤이 합해져서 140명 이렇게 된다"고 했다. 현송월은 이 관현악단의 단장 자격으로 한국에 올 것으로 보인다. 공연 내용과 관련, 우리 측은 "민요나 가곡, 고전음악 등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고, 북측도 "통일 분위기에 맞고, 남북이 잘 아는 민요, 세계 명곡 등으로 구성하겠다"고 설명했다. 정치색을 최대한 배제해 논란을 피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우리 측 수석대표인 이우성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정책실장은 "(북측은) 판문점을 경유해서 서울~평창까지 육로로 이동하는 방안을 공식 제기했다"고 했다. 그는 "서울~평창까지 KTX를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16/201801160031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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