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길리우스 '아이네이스'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만약 성경의 '돌아온 탕자'가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는데도 그 아버지가 그를 열렬히 환영했다면 아들의 방탕을 조장하는 어리석은 아비였을 것이다. 김정은은 한마디의 반성도 없이, 오히려 훈계하는, 선심 쓰는 말투로 남한 정부를 압도했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제의는 세계인들이 북핵에 대한 경계심 때문에 평창 방문을 주저하는 상황에서 환영할 일임은 틀림없다. 북한의 속셈이 동족의 행사를 돕는 것이 아니고 핵 기술을 완성할 시간을 벌면서 '깡패 국가'의 이미지를 순화해서 국제 제재를 좀 완화해보려는 것이라 해도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의 과잉 환영은 뉘우치지 않는 탕자(蕩子)에게 아버지의 집은 언제고 쳐들어가서 파먹고 휘저을 수 있는 곳으로 얕보게 만들고 있다. 올림픽이 아니라도 대화 제의에는 응해야 하겠지만 저들에게 우리 국민을 몰살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는 것임도 잊지 말아야겠다.

물론, 상식적으로는 김정은이 뒤로는 핵무기를 완성할 시간을 벌면서 표면적으로 '평화 애호국'으로서의 이미지를 벌 속셈에서라도 대회에 참가할 이유가 충분하다. 그러나 김정은은 이성이나 양식, 국제적 평판을 늘 비웃지 않는가. 이번에 김정은이 평창에 파견하는 인원 중에 테러분자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고, 평창에 참가해 주는 '대가'가 시답지 않다고 생각할 때 깽판을 벌일지도 알 수 없다. 우리 정부는 그런 불상사에 대한 대비는 전혀 없이 그저 황송하게 받들어 모실 궁리만 하는 것 같다.

고대 로마의 서사시 '아이네이스' 2장에는 트로이가 멸망하게 된 경위가 자세히 나온다. 그리스군이 거대한 목마(木馬)를 만들어서 그 안에 정예 무사 수십 명을 넣어서 트로이의 해안에 남겨놓고 자기들은 싸움에 지쳐 본국으로 철수하는 척하면서 떠 난다. 트로이의 백성들은 현자(賢者)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 목마를 성안으로 갖고 들어간다.

밤중에 목마의 배에서 나온 무사들이 성문을 열어서 야음(夜陰)을 타서 돌아온 그리스 병사들을 성안에 들이고 트로이는 지도에서 사라진다. 트로이의 제사장(祭司長) 라오콘은 목마를 성안에 들이지 말라며 절규했었다. '나는 그리스인이 두렵다. 선물을 갖고 온다 해도.'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15/201801150297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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