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기관 개편안]
전문가들 "대북 정보는 출처가 핵심… 다른 기관이 수사하면 국정원 정보인맥 훼손"

- 기능 분리땐 일이 안된다
"수사 중에도 실시간 정보 필요, 정보 옮겨지면서 새나갈 가능성
기관 간 불신으로 정보 묻힐수도"

- 정보기관 통합 국제흐름에 역행
"北 핵·미사일 수시로 도발하는 안보 위기상황에서 섣부른 결정"
 

청와대는 14일 권력기관 개편 방안을 발표하면서 "국정원은 국내 정치 및 대공 수사에 손을 떼고 오로지 대북·해외에 전념해야 한다"고 했다. 국정원은 지금보다 제한된 정보 수집 기능만 갖고 현행 대공 수사 기능은 경찰에 설치될 안보수사처(가칭)가 모두 흡수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현직 국정원 간부들과 대공 수사 전문가들은 "대공 수사에서 정보 수집과 수사를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정보 기능은 내버려두고 수사권만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은 간첩 수사를 포기하겠다는 얘기"라는 것이다. 경찰이 그만한 역량을 갖췄는지에 대한 의문도 적지 않다. 북핵·미사일 위기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섣부른 결정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조국 민정수석은 이날 브리핑에서 "국정원은 국내외 정보 수집권에 대공 수사권, 모든 정보기관을 아우를 수 있는 기획조정 권한까지 보유해왔다"고 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유우성 간첩단 수사' 등에서 국정원은 사건을 조작해 무고한 사람을 간첩으로 몰았다"며 "북한과 관련된 것은 서울·미국·연변 어디든 국내·국외 상관없이 대공 정보를 취합할 수 있다. 이후 수사가 필요하다면 수사기관(경찰)에 넘기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대공 수사에서 정보 수집과 수사를 분리한다는 것은 실전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데서 나오는 탁상공론에 불과하다"고 했다. 한 국정원 출신 간부는 "과학·테러·보안 정보뿐만 아니라 국정원 해외 파트에서 나오는 모든 정보를 총체적으로 모은 뒤 분석해야 수사가 가능하다"고 했다. "국정원의 첨단 통신·보안 정보는 그대로 두고 대공 수사 인원만 경찰로 분리시키면 대공 수사가 마비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국정원 1차장을 지낸 염돈재 건국대 초빙교수는 "대북 정보는 출처가 핵심인데 출처를 국정원이 밝히겠느냐"며 "수사를 맡은 경찰이 핵심 정보를 무리하게 사용하다 국정원의 휴민트망을 훼손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공안통인 검찰 전직 간부는 "기관 간 불신으로 정보가 사장될 수도 있고, 불확실한 정보로 수사를 망칠 가능성도 농후하다"고 했다.

이날 브리핑에서는 '경찰에 대공 수사를 할 역량이 있느냐'는 질문도 나왔다. 그러자 청와대 관계자는 "그러면 대공 수사 기능을 검찰에 주는 것이 맞느냐"고 반문하면서 "국정원 외에 대공 수사권을 가진 곳이 경찰이고 오랫동안 수사를 해왔다"고 했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가 국정원·검찰을 '적폐'로 규정한 만큼 대공 수사권을 가져갈 곳은 경찰뿐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정원에서 훈련된 대공 수사 인력이 경찰로 가기 때문에 경찰의 (대공 수사) 능력이 떨어지는 게 아니다"고 했다.

대공 수사권의 경찰 이전이 정보 누수(漏水)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고급 정보를 국정원이 발굴하더라도 경찰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새나갈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수사를 망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국정원이 대공 수사권을 활용해 부당 권력을 행사했던 사례가 최근 있느냐'는 질문에 미 CIA를 언급하면서 "정보기관이 수사 기관을 겸할 때 문제가 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경험해왔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 CD) 국가들은 압도적으로 정보와 수사를 분리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염돈재 전 차장은 "안보 위협이 극도로 높은 한국과 OECD 국가는 비교 대상이 아니다"며 "대공 수사와 정보 수집을 분리했던 서독(西獨)도 통일 후 알고 보니 동독 간첩이 3만명이 넘었다"고 했다. 실제 일부 선진국은 청와대 설명과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일 본은 북한의 테러·납치 위협이 고조되자 경시청 공안부, 외무성 국제정보국 등을 통합하는 조직을 만들어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직결시켰다. 프랑스도 2008년 국내 정보기관(DST)과 경찰정보국(RC)을 프랑스 정보부(DCRI)로 통합했다. 안보 전문가들은 "국정원에 대한 현 정부 핵심부의 뿌리 깊은 불신이 정보기관의 근간을 붕괴시킬 수 있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15/201801150027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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