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9일의 남북 회담에 대체로 만족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북의 속셈이야 뻔한 것이지만 오랜만에 남북이 마주 앉았다는 의미를 가볍게 볼 수는 없다. 대화가 이어지면 북의 도발 억제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무엇보다 북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하기로 한 이상 1988년 서울올림픽 때와 같은 북의 테러 가능성은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대표단이 북측을 향해 비핵화 쟁점을 거론했을 때 북측이 정색하며 불쾌감을 표시하고, 거기 덧붙여 "우리가 보유한 원자탄, 수소탄, 대륙간탄도로켓(미사일)은 철두철미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한 것은 현재의 남북 회담이 마주한 현실이 어떤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북은 생각을 바꾸려고 대화에 나선 것이 아니고 핵을 완성하기 위해 대화에 나온 것이 분명하다.

이날 북측 대표는 우리 측이 비핵화 문제를 계속 제기하면 "(회담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고 좋지 않은 모양새를 가져올 수 있다"고 협박했다. 한마디로 핵은 미국과 북한 문제이니 남한은 끼어들지 말라는 것이다. 북이 핵으로 미국을 위협하는 것은 한국에서 손을 떼라는 것이다. 미국을 쳐다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우리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를 향해 '온전하게 있고 싶으면 한미 훈련 중단하고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하라'고 나오는 것도 시간문제다.

우리가 남북 대화에 나선 것은 북핵을 폐기시키기 위한 목적에서다. 북이 이런 식으로 아예 말도 못 꺼내게 나오면 회담은 처음부터 다른 길로 접어든다. 그런데 우리 대표단이 북의 태도에 적절히 대응했는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핵 문제를 그저 형식적으로 한마디 한 것이라면 과거의 실패를 답습하게 된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군사적 긴장 상태를 완화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적 환경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이번 남북 합의문 2항에서 '조선반도'가 '한반도'로 바뀐 채 그대로 반영됐다. 더욱이 북측이 발표한 합의문엔 '평창'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우리 측은 이산가족 상봉 행사 개최를 위해 노력했지만, 이 또한 합의문에 담지 못했다. 이번 남북 회담은 의미가 없지는 않으나 그 한계를 드러낸 채 출발하고 있다. 북은 소규모 선수단에 걸맞지 않은 대규모 방문단을 보내 일대 쇼를 벌일 것이다. 그러나 국민이 눈을 뜨고 있으면 속임수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10/201801100313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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