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고위급 회담]

거침없는 발언, 과장된 웃음… 회담 내내 기세등등

리선권 "회담 실황 확 공개하자" 깜짝 제안으로 기선제압 시도
"고위급 회담서 비핵화 논의… 남측 언론, 얼토당토 않은 얘기"
"언론들 남한 국민 관심 반영한 것" 조명균 발언하자 몇초간 응시
 

9일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북측 수석대표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은 시종일관 기세등등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회담 초반에는 "(회담 전체 실황을) 확 드러내 놓고 공개하는 게 어떻겠냐"는 깜짝 제안으로 기선 제압을 시도했다. 그는 큰소리로 자주 웃었지만, 회담 말미에 우리 대표단이 '비핵화' 문제를 언급하자 정색을 하며 "그만 합시다. 좋게 했는데 이거 마무리가 개운치 않게 됐다"고 하기도 했다.

◇리선권 "핵·미사일은 미국 겨냥"

리선권은 회담에서 "남측 언론에서 고위급회담에서 비핵화 문제가 논의된다는 얼토당토않은 얘기가 있다. 핵 문제가 나와서 말하는데, 우리가 보유한 원자탄·수소탄·대륙간탄도로켓트(미사일)를 비롯한 모든 최첨단 전략무기는 철두철미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했다. 이에 우리 측 수석대표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우리 언론에서 비핵화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남한 국민들의 관심을 반영한 것"이라고 하자 리선권은 조 장관을 몇초간 응시하기도 했다.
 
北수행원, 회담 물품 들고 이동
北수행원, 회담 물품 들고 이동 - 북측 수행원들이 9일 오전 남북 고위급 회담이 열린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으로 팩스, 프린터 등 회담 관련 물품이 든 상자를 들고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리선권은 앞서 오전 회담에서는 남북 관계 개선을 언급하며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모두 발언에서 "온 강산이 꽁꽁 얼어붙었다. 어찌 보면 날씨보다 북남 관계가 더 동결 상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면서 현재 남북 관계를 비유했다. 이어 "자연이 춥든 어떻든 북남 대화와 관계 개선을 바라는 민심의 열망은 비유해서 말하면 두껍게 얼어붙은 얼음장 밑으로 더 거세게 흐르는 물처럼 얼지도 쉬지도 않고, 또 그 강렬함에 의해서 오늘 북남 고위급 회담이라는 귀중한 자리가 마련됐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민심과 대세가 합쳐지면 천심"이라면서 "이 천심을 받들어 오늘 북남 고위급 회담이 마련됐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조 장관은 "우리 남측도 지난해 민심이 얼마만큼 강한 힘을 갖고 있는지 직접 체험했다"며 "그런 민심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회담을 진지하고 성실하게 잘 임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대한적십자사 남북교류팀 관계자가 9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적십자사 본사에서 분주하게 일하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 언제쯤 - 대한적십자사 남북교류팀 관계자가 9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적십자사 본사에서 분주하게 일하고 있다. 우리 측은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열기 위한 적십자회담 개최를 북측에 제안했다. /장련성 객원기자

리선권은 설날에 만났다는 조카 얘기를 꺼내며 "올해 대학에 가는 조카가 2000년 6월에 출생했다"고 했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언급하려는 의도였다. "뒤돌아보면 6·15 시대 그 모든 것이 다 귀중하고 그리운 것이었고 생각해보면 참으로 아쉬운 시간이었다"고 했다. 리선권은 또 "(조 장관이) 유년 시절 스케이트 탔다는 소리를 들었다"며 "(스케이트 타는) 동심이 아주 순결하고 깨끗하고 불결한 게 없다. (…) 순수한, 또 우리 단합된 그것이 합쳐지면 회담이 잘되리라 생각한다"고 했다. 우리 언론은 회담에 나서는 조 장관이 초등학교 때 스케이트 선수라고 보도했었다.

◇"회담 실황 공개하자" 깜짝 제안도

리선권은 또 "오늘 이 고위급 회담을 지켜보는 내외 이목이 강렬하고 기대도 크다"면서 "확 드러내 놓고 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남북 대화는 모두 발언까지 공개하고 나머지는 비공개로 진행됐는데, 회담 내용 전체를 실황 중계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이에 대해 조 장관은 "할 얘기가 많은 만큼 통상 관례대로 회담을 비공개로 하고 필요하면 중간에 공개회의 하자"고 했다. 북한 전문가들은 "조 장관이 리선권 기습에 순조롭게 대처했다"고 평했다. "리선권은 북한이 통 크게 협상에 나선 점을 부각시키려고 많은 준비를 했을 것"이라며 "실황 중계 시 처음부터 끝까지 북한이 짠 각본대로 흘러갔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조 장관이 "시작이 반"이라면서 속담을 얘기하자 리선권은 "혼자 가는 거보다 둘이 가는 길이 더 오래간다. 마음이 가는 곳에는 몸도 가기 마련"이라고 답했다.

◇대남 라인 핵심 맹경일도 참석

이날 북한 측에서는 맹경일 통일전선부 부부장(차관급)이 지원단 자격으로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맹경일은 북한의 대남 공작을 맡고 있는 통전부의 2인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2015년 평양을 방문한 이희호 여사를 직접 수행했고,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당시 북한 황병서·최룡해·김양건 등과 함께 한국을 방문한 대남 라인 핵심이다. 이번 회담에서 그의 정확한 역할은 알려지지 않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10/201801100023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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