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새해 연일 평화 공세… '평창 고위급 회담' 사실상 수용]

北, 협상장서 한미훈련 중단과 개성공단·금강산 재개 요구할 듯
2011년에도 北이 먼저 회담 제의… 이틀만에 협상 깨고 해킹 등 도발
美언론선 "北, ICBM 발사 준비"
 

3일 오후 3시 30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남북연락사무소. 전화기의 벨이 23개월 만에 울렸다. 판문점 우리 측 시설 '자유의집' 2층에 있는 남북 직통전화 앞에서 대기하던 우리 측 연락관이 수화기를 들었다. "○○○입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강한 북한 억양으로 "○○○입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자유의집 맞은편 판문각에 근무하는 북측 연락관이었다. 2016년 2월 10월 우리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중단 조치에 맞서 북한이 판문점 연락 채널을 일방적으로 끊은 지 693일 만의 통화였다. 통일부는 "오후 3시 30분부터 50분까지 통신선 점검 등 상호 접촉을 진행했다"고 했다. 우리 연락관들은 평소 오후 4시쯤 업무를 마무리했지만 이날은 6시 넘어서까지 대기 상태를 유지했다. 북측에서 추가 연락을 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실제 북측은 오후 6시 7분 전화를 걸어와 "오늘 통화는 마감합시다"라고 했다.

전방위 평화 공세 나선 北

북한은 이날 판문점 연락 채널 복원을 사전 예고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리선권 위원장이 오후 1시 19분 조선중앙TV를 통해 '공화국 입장'을 발표했다. 남색 정장에 줄무늬 넥타이 차림으로 등장한 그는 "(김정은 동지께서) 평창 올림픽경기 대회 대표단 파견 문제를 포함해 회담 개최와 관련한 문제들을 남측과 제때에 연계(연락)하도록 3일 15시(한국 시각 오후 3시 30분)부터 북·남 사이의 판문점 연락 통로를 개통하라는 지시를 주셨다"고 했다.
 
23개월 만에 北과 통화중 - 판문점 연락사무소의 우리 측 연락관이 3일 오후 3시 30분쯤 북측 연락관과 통화를 하고 있다. 판문점 연락 채널(직통 전화)은 2016년 2월 끊겼다가 1년 11개월 만인 이날 복원됐다. 왼쪽 초록색 전화기와 오른쪽 빨간색 전화기는 기능이 같지만 초록색 전화기는 발신용으로, 빨간색 전화기는 수신용으로 쓴다. 한 대가 고장나면 나머지 한 대를 사용한다. 두 전화기 사이에 있는 초록색과 빨간색 버튼은 호출 버튼이다.
23개월 만에 北과 통화중 - 판문점 연락사무소의 우리 측 연락관이 3일 오후 3시 30분쯤 북측 연락관과 통화를 하고 있다. 판문점 연락 채널(직통 전화)은 2016년 2월 끊겼다가 1년 11개월 만인 이날 복원됐다. 왼쪽 초록색 전화기와 오른쪽 빨간색 전화기는 기능이 같지만 초록색 전화기는 발신용으로, 빨간색 전화기는 수신용으로 쓴다. 한 대가 고장나면 나머지 한 대를 사용한다. 두 전화기 사이에 있는 초록색과 빨간색 버튼은 호출 버튼이다. /통일부
새해 벽두부터 남북은 '김정은 신년사(1일)→통일부의 고위급 회담 제의(2일)→판문점 연락 채널 복원(3일)'을 주고받았다. 북한은 이날 통화에서 고위급 회담 수용 여부를 밝히진 않았지만, 판문점 채널을 연 것 자체가 회담 수용 의사를 비친 것이란 관측이다. 북한의 관영매체들은 김정은 신년사 발표 이후 대남 비방·중상도 중단했다.

회담 열리겠지만 '진통' 예상
 

남북 간 회담은 시기·장소·형식·의제 등에 관한 미세 조정만 이뤄지면 성사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실제 회담이 시작되면 진통이 시작될 거란 관측이 많다. 고려대 남성욱 교수는 "북한이 평창 참가 청구서를 들이밀 것이고 회담도 삐걱거릴 것"이라고 했다. 홍관희 성균관대 초빙교수도 "한·미 훈련 중단과 함께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도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우리 정부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다.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제재 기조에도 역행한다. 전직 통일부 관리는 "현실적으로 평창 문제에만 국한된 낮은 수준의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북한 미사일도 변수다. 미 언론은 '북한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를 준비 중이고 수일 내에 이뤄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北, 과거에도 회담 제의하고 먼저 깨

북한의 유화 제스처는 2011년 초를 연상시킨다. 북한은 그해 1월 20일 고위급 군사회담을 전격 제의했다. 당시 북한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이후 한·미의 군사 압박과 5·24 제재로 안보·경제적 위기감이 컸다. 하지만 북한은 회담 시작 이틀 만에 결렬시켰다. 이후 북한은 '대북 심리전 조준 격파사격' 위협(2월)→GPS(위성항법장치) 전파 교란(3월)→농협 전산망 해킹(4월) 등 도발을 이어갔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은 제재의 숨통을 틔우고 핵개발 시간을 벌기 위해 남북 회담을 활용했다"고 했다. 이번에도 당시 상황이 되풀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은 "신년사 내용을 너무 믿으면 낭패를 볼 수 있다"며 "김정은은 항상 신년사에서 '남북 관계 개선'을 언급해 놓고 도발로 화답했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04/201801040029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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