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미래를 말해야 하는데 판관처럼 과거를 따지고 단죄
공무원 늘리고 최저임금 올리면 미래 세대 부담 어찌 되는지
전쟁 나면 어떡하나 물어도 정부는 '미래의 생존'엔 침묵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세상을 관찰하고 분류하기를 즐겨 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의 말도 세 가지 장르로 나누었다. 과거에 있었던 일을 말하는 사법적 장르, 현재의 가치를 논하는 제의적 장르, 그리고 미래의 정책을 말하는 정치적 장르가 그것이다. 법정에서는 사건의 당사자들이 과거 사건을 놓고 과거 시제로 다툰다. 이에 비해 정치인들은 앞으로 다가올 세상의 비전을 미래 시제로 펼쳐 보인다. 그들이 파는 건 꿈과 정책이다. 멋있게 들리지만 실현될지는 알 수 없다. 정치인의 말이 허황되게 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오래된 분류법을 우리 정치인들은 모르는 것이 분명하다. 자신들이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또 해야 하는 말이 어느 장르에 속하는지, 분간을 못 하는 것 같아서다. 정치인의 소통이란 공동체의 비전을 공유하는 미래 지향적 내용이어야 함에도 그들은 여전히 법률가처럼 과거를 따지고 판관처럼 단죄하는 데 여념이 없어 보인다.

지난해 새 정부가 출범했지만, 시간은 계속 과거에 머무른 느낌이다. 청와대 낡은 캐비닛 속 서류를 시작으로, 국정원의 과거 자료가 파헤쳐지고 법원 컴퓨터의 파일도 열람되었다. 건설 중이던 원자력 발전소를 중단시킨 채 공론조사로 시간을 보냈다. 이전 정부가 한 국제 간 협약의 내용이 '중대 흠결'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공포되고, 이전 대통령(들)의 정책이행 과정과 다양한 과거 행적들이 연일 뉴스를 장식한다. 그렇게 쏟아지는 언어의 행렬이 우리 사회를 과거에 붙들어두는 주문(呪文)이라는 것을 지금 정부는 모르는 것 같다.

과거 담론이 미래를 압도하는 사회는 희망으로의 출구가 막힌 사회나 다름없다. 그런 사회는 과거와 현재를 핑퐁처럼 오가며 미세 먼지보다 더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다. 우리의 세금으로 월급을 주는 공무원 숫자를 늘리는 정책은 나름의 논리에도 결국은 우리 안의 자원을 우리 안에서 회전시키는 정책에 지나지 않는다. 미래 세대의 부담에 대해서 정부는 시원하게 말한 적이 없다.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정규직을 늘리는 정책에 대해 '그럼 우리들은 앞으로 어떻게 되죠?'라고 묻는 상공인들이 많은 것 같다. 그들의 미래에 대해서도 정부는 설명을 아낀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12월11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 정책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런 정책이 데려갈 우리의 미래에 대한 설명의 의무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게 우리 사회가 공유하는 비전인지, 그래서 우리는 지금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 설명하고 보여 달라는 것이다. 미래의 담론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 정치인 본연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반도의 운명에 대해 정부가 꿈꾸는 미래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 동맹국 미국과의 공조를 파고드는 중국의 공세 사이에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궁금하다. 비서실장의 UAE 출장을 두고 항간에는 북한 인사 접촉설이 돌았다. 지금 정부가 그리는 북한과의 미래가 어떤 모양인지 알고 싶다. 무엇을 위한 외교이고 누구를 위한 대화인지, 그 지향점을 국민이 알고 동의한다면 홀대 논란이나 삐걱거리는 이웃과의 외교 마찰음도 조금은 납득할 수 있을지 모른다.

미래가 안 보이는 한반도 정세 속에서 국민들은 '전쟁 나면 우리는 어떡하죠?'라고 정부에 묻는다. 정부는 핵전쟁에 대비한 훈련은 오히려 불안을 가중시킬 것이라며 하지 않겠다고 한다. 국민이 제시한 미래 담론을 정치가 거부하는 꼴이다. 먼 하와이에서 북한의 핵 공격에 대비한 훈련을 결정한 건 안 할 때보다 주민의 생존 가능성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은 미래의 생존을 걱정하는데, 정부는 국민의 생존율을 높일 어떠한 청사진도 내놓지 않고 있다.

새해를 여는 1월이다. 1월(January)의 어원은 '문(門)'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왔다. 문의 수호신 '야누스(Janus)'는 문의 안쪽과 바깥을 바라보는 두 개의 얼굴을 지녔다. 지난해 새 정부가 새롭지 않았던 건 앞을 보고 한 일보다 뒤를 보고 한 일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새해에는 정치인이 정치인다운 언어를 구사하기를, 그래서 미래를 직시하고 긍정하는 말이 넘치기를 기대한다.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정책이 아니라 밖으로 증식하고 뻗어 나가는 정책을 보고 싶다. 우리 안에서 소모되는 에너지를 국가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돌렸으면 한다. 올해가 과거의 연장이 될지, 미래의 출발점이 될지는 시선을 어느 쪽에 두느냐 선택에 달렸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01/201801010158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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