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칼럼
[강동완] 탈북민 88% "北서 영상물 봤다"… 한류는 北 무너뜨릴 '트로이 목마'
조선  |  @chosun.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12.27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오늘의 주제: 빗발치는 총탄 뚫고, DMZ 지뢰밭 넘어 귀순하는 北병사들… 이들은 北서 한류 접한'새 세대']

인기 드라마, 일주일이면 北으로 들어가… 北선 南노래 한두 곡 알아야 '세련된 사람'
黨간부부터 최전방 군인까지 몰래 시청… 한류가 北정권 장악력에 균열 내고 있어

北, 단속조 만들고 밀수 막으려 난리지만… 장마당, 軍과 뇌물로 통하며 한류시장 형성
 

강동완 동아대 교수·부산하나센터장
강동완 동아대 교수·부산하나센터장
5발의 총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던 북한군 병사가 기적처럼 깨어났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그가 갈망했던 것은 무엇일까. 의식이 돌아온 후 병실에서 그는 걸그룹 소녀시대가 부르는 '지(Gee)'를 들었다. 소녀시대와 영화를 좋아한다는 그는 북한에서 한국 문화를 접한 이른바 '새 세대'로 불린다. 지난 21일 중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 지뢰밭을 뚫고 귀순한 10대의 북한 군인도 마찬가지다.

국내 입국한 탈북민을 대상으로 매년 진행하는 연구 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8명(88%·2016년 조사)이 북한에 있을 때 한국 영상물을 접한 적이 있다. 인기 드라마는 일주일 정도 지나면 북한에 들어간다. 2000년대 초반 한류를 주도했던 드라마 '천국의 계단' '가을동화' '대장금'은 북한에서도 단연 인기가 좋았다. 북한에서 한 번이라도 남한 영상물을 접해본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본 드라마로 꼽는 프로그램은 '천국의 계단'이다. 최근에는 드라마·영화뿐 아니라 '1박 2일' '전국노래자랑' 같은 예능 프로그램도 인기다. 북한 주민 사이에는 남한 노래 한두 곡 정도는 부를 줄 알아야 '세련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북한 가요는 '사상'만 강조하지만 한국 노래는 '사랑'을 주제로 인간의 감정을 노래한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북한 내 한류는 외부 정보 접촉이 제한된 북한 주민들에게 남한을 이해하는 기회의 창이다. 북한 주민들은 평소 당국으로부터 교육받은 '썩고 병든 자본주의 남한'이 아닌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며 경제적으로 발전한 남한'을 경험한다. 한국의 발전상 및 민주화에 대한 인식은 자연적으로 북한 체제에 대한 불만과 불신으로 이어진다.
 
일반 주민은 물론 당·정·군 고위층과 통제가 심한 최전방 정예 군인까지도 한류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북한 당국은 "외부 사조에 대한 단속과 제국주의 사상·문화 침투 봉쇄"를 강조하며 체제 결속을 강화하고 있다. 비(非)사회주의 행위를 단속하는 별도의 단속조를 운영하고, 북한 내 유입 통로인 국경 밀수를 엄격히 차단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단속에는 한계가 있다. 시장화와 연계된 조직이 생겨나고 뇌물로 인한 봐주기 현상이 만연하고 있다. 한국 영상물 시청을 위한 기기는 북한 장마당에서 인기리에 거래되는 품목이다. 북·중 접경 지역에서 북한 내륙으로 이어지는 밀수망(網)은 국경경비대 및 간부들과 조직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한국 영상물 시청을 위한 기기들도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일명 '노트텔'로 불리는 EVD 플레이어, 중국산 저가 태블릿 PC가 인기다. 북한말로 엠피오(MP5)라 불리는 디지털 기기도 중국을 통해 북한으로 유입되는데, 기존의 USB보다 더 작은 마이크로 SD 카드를 사용하는 게 특징이다. 녹화기와 텔레비전을 연결하여 '알판(VCD)'으로 시청하던 방식을 넘어 다양한 디지털 기기가 북·중 국경을 통해 북한 내륙으로 유입된다.

기기의 진화로 한국 영상물 시청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장마당을 통해 거래하는 까닭에 인적·물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군인들이 뇌물을 받고 지역 간 이동을 무마해 주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장마당 상인은 군인과 조직적으로 연계하면서 북한 사회에 '한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북한 군인처럼 한국 영상물 유통을 막아야 하는 이들이 오히려 더 많이 시청하는 북한은 변화할 수밖에 없다.

선군정치 이념 아래 군부의 위상과 권력이 막강한 북한 체제에서 군인의 기강은 체제의 유지·변화 여부와 직결된다. 북한 군인들이 외래문화를 접하고 의식과 행위 양식이 변한다는 사실은 체제 내구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다. 한국에 대해 적대감 대신 '나도 저런 나라에서 살아봤으면' 하는 동경이 생기고 체제에 대한 충성도와 결속력이 떨어진다.

단순한 호기심과 재미 위주로 한국 영상물을 시청하는 경우도 있다. 단순 시청이 곧 체제 변화라는 거시적 변화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상 통제와 학습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처벌이 강도 높게 진행됨에도 여전히 북한군 내에서 한국 영상물 시청이 근절되지 않는다는 점은 북한 당국의 통제와 장악력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사상 통제와 학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뇌물을 주고 단속을 무마할 수 있는 구조라는 점에서 장악력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북한이 '화성 15호'를 발사하며 핵 무력 완성을 자랑하지만 안으로부터의 균열과 틈새는 체제 변혁의 가장 큰 위협 요인이다. 한국 드라마와 K팝이 '21세기의 트로이 목마' 역할을 하고 있다. 더 공세적인 외부 정보 유입을 통해 북한 주민이 북한 정권의 실체를 인식하고 사회 변화를 이끄는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야 한다. 소녀시대 '지(Gee)'에 열광하는 최정예 군인들을 보며 김정은은 그 노랫말처럼 '깜짝 놀라 몸이 떨려 잠도 못 이룰지' 모른다. '제국주의 사상 문화' 침투를 봉쇄하기 위해 김정은이 엑소(EXO)의 노래처럼 '으르렁으르렁'대도 북한 주민이 '한류'를 즐기는 것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부드러운 힘 '소프트 파워'이기 때문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26/2017122602807.html

조선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  Tel : (02)724-6650,6523  |  E-mail : nkchosun@chosun.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SITE_MANAGER
Copyright © 2013 NK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Contact webmaster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