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혁 문화부 기자
정상혁 문화부 기자

'나는 서울의 하늘 밑을 걷는다… 강남에는 비가 내리고, 인천 쪽에는 태양이 빛난다. 비를 뚫고 북한산이 북쪽에서 거인처럼 떠오른다.' 서울에 대한 이 문장은 프랑스인이 썼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르 클레지오가 최근 낸 장편 '빛나-서울 하늘 아래'는 전라도에서 상경한 열아홉 살 여성 빛나가 불치병으로 외출하지 못하는 중년 여성에게 바깥세상을 들려주는 내용. 대표적 지한파(知韓派) 작가지만, 서울을 대놓고 찬미하지 않고 가난과 범죄의 삭막함을 비춰가며 거대 도시의 삶을 성실히 묘사한다. 지난 14일 출판기념회에서 그는 "이야기를 타인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애정, 도시에 대한 사랑이 생겨난다"고 말했다. 소설 속 서울은 내년 3월 프랑스·스페인어 등으로도 번역돼 유럽에 소개될 것이다.

"문학은 무용하므로 유용하다"는 문학평론가 김현의 선언은 문학이 도시를 품을 때 극적 사실이 된다. 최근 일본 니가타를 다녀온 문학평론가 김화영은 도시가 문학으로 번성하는 현장을 실감했다. 이곳은 일본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대표작 '설국(雪國)' 배경지다. 김씨는 "도시 곳곳이 소설이었다"고 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와 같은, 문장마다 조용히 쌓이는 순백의 언어를 밟으며 독자는 기꺼이 비행편과 기차표를 끊어 그 고장의 료칸(旅館)으로 간다. 사소한 도시 풍경이 문학성을 획득하고, 일상에 의미가 돋아난다. 문학이 도시의 자산이 된다. 서울시가 르 클레지오의 체류비와 번역비 지원을 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서울을 소재로 한 소설 '빛나'를 낸 르 클레지오는 14일 "처음부터 외국인의 여행기가 아니라 내가 서울에서 만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한국은 점차 외국 작가들의 작품 속 주요 무대가 돼가고 있다. 핀란드 대표 소설가 투오마스 퀴뢰는 서울과 강원도 평창을 소재로 '한국에 온 그럼프'를 현지 출간했다. 콜롬비아 소설가 안드레스 펠리페 솔라노는 지난 8월에도 부산을 배경으로 한 단편 '피그 스킨'을 발표했고, 1년간 서울 체험에 기반해 일기처럼 쓴 장편 '외줄 위에서 본 한국'도 내년에 출간할 예정이다. 문학을 통한 관광산업 촉진이라는 얄팍한 계산이 아니다. 그는 "좋은 소설을 통해 독자는 관광지로서의 도시가 아닌 복잡하고 여러 얼굴을 가진 서울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문학이 도시의 이해를 돕고 더 나아가 문화적 이해로 확장될 것이다.

최근 한국 문학을 진단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작품 속에서 '지금 여기'가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소재는 이미 세계화됐고, 굳이 모든 배경이 내수(內需)를 지향할 필요는 없으며, 신토불이로 흘러서도 안 된다. 다만 도시 자산으로서의 문학은 점차 축소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올해 등단 50주년을 맞은 시인·소설가 윤후명은 고향 강릉의 작은 도서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사는 곳, 쉽게 지나치는 작은 언덕이나 건물 같은 것들이 문학으로 들어와야 문학과 삶이 가까워진다." 거창한 문학관이나 공원을 세워대지 않더라도, 문학은 도시를 껴안을 수 있는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20/201712200292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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