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살해 장면 생중계하고 고층빌딩서 사진 찍다 추락
北 병사의 귀순 담은 영상은 탈출 과정 영화처럼 보여줘
자극적 사진·영상 넘치지만 카메라, 주인보다 똑똑해져
 

조인원 멀티미디어영상부 부장대우
조인원 멀티미디어영상부 부장대우

올해 달력도 열흘 남았다. 해가 지나면 과거가 될 사진과 영상, 카메라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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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도 영상도 넘쳐나니 주목받기 위해 너도나도 자극적인 시도를 더해간다. 해부 실습을 하던 대학병원 의사들이 시신 앞에서 셀카를 찍다가 비난을 받았다. 영국에 간 한국 유학생은 유명 관광지 해안절벽 위에서 공중으로 점프하는 사진을 찍다가 발을 헛디뎌 60m 아래로 추락했다. 고층빌딩에 올라 아찔한 장면을 연출하던 중국의 한 소셜미디어 스타도 62층 꼭대기에 안전장비 없이 매달려 영상을 찍다가 추락사했다. 미국 미네소타주에 사는 한 여자는 남자친구에게 두꺼운 백과사전을 들게 하고 총을 쏘는 영상을 찍었다. 총알이 책을 통과하지 못하는 것을 보여주려다 책을 관통한 총알에 남자는 목숨을 잃고 여자는 살인죄로 기소됐다. 그녀는 촬영에 앞서 자신의 트위터에 "가장 위험한 영상을 찍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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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나 페이스북이 생방송을 시작하면서 판도라 상자가 열린 듯 온갖 희한한 것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소셜미디어 생방송은 사전 검열이 없어 제재할 방법도 마땅히 없다. 스웨덴에서는 남자 3명이 한 여성을 성폭행하는 모습을 페이스북 라이브로 중계하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미국 클리블랜드에서 한 남자가 길 가던 70대 노인을 총으로 살해하는 장면이 생중계됐다. 태국 푸껫에선 부부싸움에 화가 난 한 남자가 11개월 된 자신의 딸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장면도 중계됐다. 전 세계에서 개인 미디어로 활용하는 소셜미디어 생방송 기술은 진보하지만 그에 걸맞은 활용은 요원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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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발달로 사진의 보정이 쉬워지면서 남들을 속이는 데도 사진이 이용되고 있다. 지난 2월엔 부산경찰청이 응시원서 사진을 교묘히 합성해 토익 대리 시험을 본 서류상 응시자와 대리 응시자 21명을 붙잡았다. 이들은 3년 동안 사진을 엇비슷하게 합성하는 방법으로 대리 시험 한 건당 400만~500만원을 받았는데 합성 수법이 아주 교묘해 시험 감독관을 속이고 공인 점수도 받았다고 한다. 아무리 다르게 생겨도 눈코입을 어중간하게 합성하면 시험감독까지도 속이는 게 사진이다. 사기꾼들은 눈으로 보는 것이 진짜라고 믿는 인간 심리를 이용한다.
 
[조인원의 사진산책] 2017년의 소셜미디어… 엽기 동영상부터 北 병사 탈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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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올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잇달아 쏘며 뉴스를 전부 빨아들였다. 전문가들은 김정은 위원장이 나온 노동신문 사진이나 핵 실험장 주변을 찍은 흐릿한 위성사진들을 뚫어지게 보면서 상황을 분석한다. 담배를 든 김정은의 책상 앞에 펼쳐진 흐릿한 지도나 사진 귀퉁이 컴퓨터 모니터에 나온 발사각을 보며 추정한다. 과연 이런 사진들은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우리의 생존이 걸린 문제가 북한이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사진들로만 판단되고 있다. 숨은그림찾기도 아니고 이런 아이러니도 없다. 전 세계가 정보를 공유하는 시대에 아직도 북한은 숨어 있다. 2013년 장성택이 처형당하기 직전 험상궂게 생긴 군인들에게 목덜미를 잡혀 끌려나가는 사진은 공포 그 자체였다. 영화광이었던 자기 아버지와 다르게 김정은은 사진으로 북한을 통치하고 자기 모습들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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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한 북한 병사의 탈출 순간은 영화처럼 생생했다. 차가 빠르게 달려오는 모습부터 구출까지 카메라가 긴박했던 탈출 현장을 따라다녔다. 어떻게 모든 장면이 기록돼 있었을까? 고해상도 CCTV 카메라들이 여러 각도에서 촬영했기에 가능했다. 병사가 낙엽으로 은폐한 곳은 열 감지 적외선 카메라를 통해 녹화했다.

전방은 이제 졸린 눈을 비벼가면서 암구호로 교대하던 초병들만 경계근무를 서는 게 아니다. 휴전선 철책에는 이미 수많은 CCTV 카메라가 설치돼 상하좌우로 렌즈를 움직여가며 경계를 강화한다. 영상감시병들은 육안보다 뛰어난 시야의 고성능 카메라와 연결된 상황실 모니터를 보며 나라를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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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다르 피차이(Pichai) 구글 CEO는 지난 5월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구글 렌즈'를 공개했다. 구글 렌즈는 스마트폰에 찍힌 사진 속 물체의 정보를 알려주는 앱이다. 스마트폰으로 어떤 사물의 사진을 찍으면 그 사물에 대한 정보를 앱이 알려준다. 네이버나 아마존, 이베이, 알리 익스프레스에서도 검색 창의 카메라 아이콘을 눌러 사진을 찍으면 앱이 알아서 비슷한 형태의 상품들을 검색해준다.

한국과학기술원(KIST) 연구진도 스마트폰으로 토마토 사진을 찍어 앱으로 전송하면 인공지능이 빅데이터로 토마토의 발육 정보를 인식하고 분석해서 예상 수확량을 알려주는 스마트팜 2.0 기술을 공개했다. 폰 카메라는 더 이상 사진만 찍지 않는다. 주인보다도 똑똑해지고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20/201712200293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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