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혜 도쿄 특파원
김수혜 도쿄 특파원

12일 오전 7시 30분 일본 북부 니가타현 가시와자키시 바닷가에 남루한 목선이 또 한 척 밀려왔다. 뱃머리에서 꼬리까지 10.7m. 모터가 달렸을 뿐 배가 아니라 '뗏목'에 가까웠다. 소금물에 절었고 반쯤 부서진 상태였다. 뚜껑 없는 목관(木棺)이나 다름없었다. 주민의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이 목선 안팎에서 시신 두 구를 수습했다. 한 구는 배 안에, 다른 한 구는 배에서 650m 떨어진 뻘밭에 누워 있었다. 두 구 모두 시신 일부가 백골이 된 상태였다.

같은 시각 혼슈 최북단 아오모리현 후카우라마치에도 배 한 척이 떠밀려왔다. 오후 들어 "죽은 사람이 바닷물에 잠겼다 떴다 한다"는 주민 신고가 이어졌다. 경찰은 벌거벗은 시신 두 구, 웃통 벗고 바지만 입은 한 구를 건졌다. 한 구는 두 다리가 없었다.

외딴 어촌에 기자와 경찰이 몰려갔다. 어민들은 "우리 동네에 떠내려 온 북한 목선이 올겨울만 일곱 척째"라고 심란해했다. 정작 목선의 출발지 북한에서는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축하 행사가 열렸다. 터질 듯 살찐 김정은이 미사일 발사 관계자들을 평양 복판 4·25문화회관에 불러 상 주고 악수했다. 다른 어떤 참석자보다 김정은 얼굴이 윤기도 흐르고 혈색도 좋았다.

11월24일 일본 아키타현 유리혼조시(由利本莊市) 해안의 방파제에 표류해 있는 목조 어선. 일본 언론은 전날 이 배와 북한 국적 추정 남성 8명이 발견돼 경찰이 조사 중이라고 보도했다. /연합뉴스
일본 정부는 최근 4년간 일본에 떠밀려온 북한 목선이 총 180척이라고 했다. 이 가운데 83척이 올해 떠내려 왔고, 그중에서도 53척은 11월 이후에 왔다고 했다. 당국은 북한 목선이 부쩍 늘어나는 이유를 세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국제사회의 제재가 심해졌다. 둘째, 그 와중에 지난달 본격적인 동계 조업이 시작됐는데, 북한은 이미 동해·서해 연안 조업권을 중국에 팔아넘긴 상태라 어민들이 뭍에서 수백㎞ 떨어진 일본 배타적경제수역 코앞까지 나가야 했다. 셋째,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1월 내내 바다가 유례없이 사나웠다.

독재자가 연안 조업권까지 팔아가며 돈 모아 미사일 쏘는 사이에 인민은 먹고살려고 뗏목 같은 배를 타고 나갔다가 거친 바다에 잡아먹혔다. 노동신문은 "겨울철 물고기잡이 전투에서 승전 포성을 울리자"면서 "우리가 잘사는 것을 바라지 않는 제국주의자들의 반공화국 책동이 극도에 달한 오늘, 고깃배들은 조국과 인민을 보위하는 군함이고, 물고기는 군대와 인민들에게 보내주는 총포탄과 같다"고 썼다.

니가타에 난파한 목선 안에서는 김정일 배지가 굴러다녔다. 그의 아들이 집권 6년간 아흔 발 가까이 미사일을 쐈다. 일본 바닷가에 시신 다섯 구가 밀려온 날에도 유엔 주재 북한 대사는 북한 인권 문제를 따지는 일본 외교관에게 "존재하지 않는 문제를 거론한다"고 되레 성냈다.

우리 정부는 그런 북한을 평창에 데려오려 애쓰고 있다. 북한에 주기로 한 800만달러는 해가 바뀐 뒤 어떻게든 줄 방침이고, 우리 땅에 우리가 사드 놓는 문제는 북한 혈맹인 중국에 거듭 양해를 구하고 있다. 많은 국민이 고개를 저으며 묻고 싶어 한다. 이게 맞는 방향이냐고.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14/201712140303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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