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진 교수, 80년대 '사회학개론' 수업 들은 157명 생애 추적조사]

노사모 가입한 '정치화된 386'
자원봉사활동 참여 21%뿐… 국가 기본방향 바꾸는데 관심
주변인과 관계 더 중시하는 386,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포용력 높아
 

한상진 교수는 1981년 서울대 사회학과에 조교수로 부임해 교양 강의인 '사회학 개론'을 열었다. 1980년대 이 강의를 수강한 사람은 1200여명. 한 교수는 이때 자신의 수업을 들었던 '386세대' 가운데 연락이 닿은 157명의 삶과 의식을 1999년 이후 지금까지 추적 조사해 왔다. 지난 5월에도 이들을 심층 조사했다.

한 교수는 '노사모' 가입 여부에 따라 두 부류로 나눴다. 한 교수는 "당시 사회학 강좌를 들었던 학생들은 진보적 성향이 강했고, 이들이 현재 정치 활동에 적극적인지를 가르는 잣대로 '노사모 가입' 여부를 채택했다"고 했다.

정치·사회운동에 관심이 많은 이들을 '정치화된 386', 정치 이슈 대신 주변인과의 소소한 관계를 중시하는 그룹을 '민중 속의 386'이라고 구별했다. 이를 분석했더니 정치적 활동에 적극적인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과 비교해 사회봉사 활동에 소극적이고 탈북자 등 사회적 약자 계층에 대한 포용력도 떨어진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정치화된 386'은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21.3%로 '민중 속의 386'의 응답 비율(41.1%)보다 20%포인트나 낮았다. 종교 활동 참여율은 '정치화된 386'(25.0%)보다 '민중 속의 386'(33.9%)이 높았다. 친목·취미 모임 참여율은 '민중 속의 386'(60.7%)이 '정치화된 386'(50.9%)보다 높았다. 한 교수는 "정치 지향적인 386 세대는 국가 권력을 목적 실현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국가 운영의 기본 방향을 바꾸는 일에 참여하는 데 관심사가 쏠린 나머지, 약자 돕기에 관심이 적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사회적 약자 계층에 대해 '정치화된 386'은 '민중 속의 386'보다 포용력이 낮았다. 이번 설문에서 '민중 속의 386'으로 분류된 이들의 78.6%가 '장애인을 이웃으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응답했다. 반면 '정치화된 386'은 58.3%가 '그럴 수 있다'고 답했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서는 '민중 속의 386'의 71.4%가, '정치화된 386'은 52%가 이웃으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북한 이탈 주민에 대해서는 '민중 속의 386'의 78.6%가, '정치화된 386'은 68.4%가 이웃으로 포용한다고 응답했다.

1984년에 한 교수의 수업을 들었던 윤흥로(52) 삼성전자 상무는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 최근의 촛불 집회 등을 목격하면서 돈이나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며 "다양한 배경과 사고관을 갖고 살아가는 개인들의 삶이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어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386 세대 안에서 생각의 간극이 가장 컸던 주제는 '경제성장' 대(對) '복지'였다. 한 교수는 386 세대를 더 세분화해서 분석했다. '탈(脫)정치적이면서 약자를 돕는 것에 소극적인 사람들'은 복지보다 경제성장을 더 우선시했다. 반면 '정치와 이웃을 돕는 데 관심이 많은 사람'은 경제성장보다 복지에 훨씬 큰 비중을 뒀다.

안보에 대한 인식도 386 세대 안에서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탈정치적인 386 세대는 강력한 국가 안보와 한·미 동맹 강화를 중시했다. 반면 정치 지향적인 386 세대는 남북 협력과 동아시아 평화가 중요하다고 답했다.

의견 차가 가장 적었던 것은 '강하고 부유한 국가 만들기'와 '개인의 행복한 삶 추구하기' 중 무엇이 중요하냐는 질문이었다. 상당수가 개인의 행복한 삶이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한 교수는 "정치적 이념을 떠나 더불어 사는 공동체에 대해 관심이 큰 386 세대가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든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대한민국의 주축이 된 386 세대가 대학생 시절부터 품어온 에너지와 저력을 어떤 곳에 쏟아야 할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13/201712130023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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