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복무중 월남 파병 피해 휴전선 넘었다가 39년간 못떠나
日 납북자 소가 히토미와 결혼
 

2004년 7월 찰스 젱킨스(왼쪽)가 일본 도쿄 하네다 공항에 도착한 모습. 가운데는 딸 미카, 오른쪽은 아내 소가 히토미.
2004년 7월 찰스 젱킨스(왼쪽)가 일본 도쿄 하네다 공항에 도착한 모습. 가운데는 딸 미카, 오른쪽은 아내 소가 히토미. /AP 연합뉴스
주한 미군으로 복무하다 월북해 납북 일본인 여성과 결혼하고 이후 일본에 정착한 찰스 젱킨스(77)가 11일 사망했다고 일본 마이니치신문 등이 12일 보도했다. 젱킨스는 납북 일본인 소가 히토미(58)의 남편으로 2004년 일본으로 귀환했다.

주한 미군 육군 하사이던 젱킨스는 1965년 1월 비무장지대(DMZ) 정찰 임무를 수행하던 중 탈영해 월북했다. 외신에 따르면 월북 당시 그는 '소속 부대가 곧 베트남전쟁에 파병될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맥주를 10병 정도 마신 상태였다. 북한으로 가면 곧 소련으로 넘겨져 포로 교환 형태로 귀국할 수 있다는 계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월북 후 39년 동안 북한을 떠나지 못했다. 초기에는 작고 추운 집에 갇혀 하루 11시간 동안 김일성의 핵심 교시를 외우고, 폭행과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이후 평양에서 군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강사, 통역사 등으로 일했다. 1982년 북한 체제 선전 영화에 악한 서양인 역할로 출연하기도 했다. 2013년 미 애틀랜틱지 인터뷰에서 그는 "지금도 '주체'라는 말을 들으면 로봇처럼 주체사상 핵심 교시를 암송하게 된다"고 했다.

젱킨스는 1980년 일본 니가타현에서 납북된 소가(당시 19살)와 결혼했다. 결혼은 강요된 것이었지만, 두 사람은 북한에 대한 증오심을 공유하며 사랑을 키웠다고 한다. 소가는 북한 공작원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치다 2002년 북·일 정상회담 후 귀국했다. 젱킨스와 두 딸도 2년 뒤 인도네시아를 거쳐 일본으로 향했다.

그는 탈영 혐의로 일본에서 미군 군법 회의에 회부돼 금고 30일 판결을 받았지만, 형기 단축으로 석방됐다. 이후 소가의 고향인 니가타(新潟)현 사도(佐渡) 섬에 정착해 관광시설에서 선물 판매원으로 일하며 여생을 보냈다.

그는 2005년 회고록 '고백'을 통해 북한의 궁핍한 실태를 폭로했다. 평양의 아파트 침실 벽은 겨울만 되면 얼음으로 뒤덮이는 등 열악한 환경이었다고 한다. 그는 "같은 아파트에서 납북된 것으로 보이는 태국, 루마니아 여성을 목격했다"고도 했다. NHK는 "이 고발은 납치 문제를 국제 이슈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했다.

젱킨스는 평생 보복의 두려움에 시달렸다. 그는 지난 8월 LA타임스 인터뷰에서 "북한이 나와 가족을 해치지 않을까 여전히 두렵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13/201712130022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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