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억류됐다 숨진 오토 웜비어 아버지 프레드 웜비어 인터뷰

변호사·의원들 만나 호소해… 북한 테러지원국 재지정 이끌어
"아들 살아있었다면 오늘 생일"
 

"아들을 잃은 상실감이 우리 가족에게 남아있다. 여전히 우린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프레드 웜비어(59)씨는 11일 본지와 통화에서 "아들 없이 아들의 생일을 맞으니 낯설다"고 했다. 그의 아들 오토 웜비어는 2015년 북한에 억류됐다가 지난 6월 혼수상태로 송환돼 닷새 만에 숨졌다. 살아 있었다면 12일인 스물네 번째 생일을 온 가족이 고향인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집에서 함께 맞았을 것이다.
 
오토 웜비어의 아버지 프레드(앞줄 왼쪽)와 어머니 신디(앞줄 오른쪽)가 지난 6월 22일 장례식장인 신시내티 와이오밍 고등학교에서 아들의 관이 영구차로 옮겨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오토 웜비어의 아버지 프레드(앞줄 왼쪽)와 어머니 신디(앞줄 오른쪽)가 지난 6월 22일 장례식장인 신시내티 와이오밍 고등학교에서 아들의 관이 영구차로 옮겨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달 초 미국 의회 전문지 '더힐' 등은 "9년 만에 이뤄진 북한의 테러지원국 재지정 뒤엔 웜비어의 부모가 있었다"고 보도했다. 프레드씨는 "로펌 '맥과이어우즈'와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방법에 대해 논의했었다"고 했다. 이 로펌 소속인 리처드 쿨렌 변호사가 마이크 펜스 부통령 법률 자문을 하는 등 미국 정계에 발이 넓다는 점을 고려해 로펌을 선택했다.

쿨렌 변호사를 만난 지 11일 후 북한이 테러지원국에 재지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프레드씨는 "북한은 자신들이 희생자라고 주장하지만, 내 아들을 고문·납치한 명백한 테러리스트"라며 "아들도 하늘에서 자랑스러워할 것"이라고 했다.

프레드씨 부부는 아들의 죽음 이후 북한의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위해 발로 뛰었다. 지역구 상원의원을 비롯해 외교위원회 의원들과 수시로 만나 당위를 설명하고 지지를 호소했다. 테드 크루즈 의원 등 12명 상원의원을 설득해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에게 재지정 촉구 서한을 보내도록 했다. 지난 9월 폭스 방송 토크쇼에 출연해 "북한이 내 아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에게 저지른 테러에도 불구하고, 테러지원국이 아니란 사실이 놀랍고 화가 난다"고 호소했다.
 
오토 웜비어(가운데)가 여동생 그레타(오른쪽), 남동생 오스틴(왼쪽)과 함께 찍은 사진.
오토 웜비어(가운데)가 여동생 그레타(오른쪽), 남동생 오스틴(왼쪽)과 함께 찍은 사진. /웜비어 페이스북
프레드씨는 원하던 소식을 들었지만 슬픔을 떨치진 못하고 있다. 아들의 방 한쪽엔 지난해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시카고 컵스 유니폼이 걸려 있다. "아들이 응원하던 팀이었다"며 "무사히 돌아오면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라고 했다. 아들이 북한에 억류된 날부터 가족들이 매일 쓴 일기도 간직하고 있다.

프레드씨는 "혼수상태로 실려 온 아들을 처음 봤을 때의 모습, 그 이후 벌어진 일들이 가족에겐 큰 슬픔으로 남아있다"고 했다. 아들은 고열에 시달렸고, 오른발과 몸 곳곳엔 흉터가 가득했다. 프레드씨는 "그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여전히 힘들다"며 "일상으로 복귀하기까진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했다.

가족이 견디는 힘은 주위의 응원이다. 아들의 모교인 와이오밍고교엔 지금도 웜비어 가족에게 보내는 응원 편지들이 온다. 소셜미디어엔 웜비어 추모 공간도 생겼다.

웜비어의 대학 친구 알렉스 바조니스씨는 본지 통화에서 "우리는 이 비극을 넘어 잘 이겨 나가야 하며 이것이 오토가 진정 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바조니스씨는 지난 6월 버지니아대에서 열린 '촛불 추모식'에서 "오토와의 만남이 모두의 인생을 다채롭게 만들었다"고 했다.

프레드씨는 "한국인들이 우리 가족 이야기에 큰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는 "한국은 훌륭한 나라이고 한국인들을 존경한다. 한·미 동맹에 강한 믿음을 갖고 있다"며 "한국이 북한과의 일전(一戰)에서 반드시 승리해달라. 그것이 아들을 기억하는 방법일 것"이라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12/201712120019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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