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상]

육·해·공·해병대 예비역 영관장교 연합회, 추모식 마지막 주관
내년부터는 지난 6월 출범한 '이승복평화기념사업회'가 맡기로
 

지난 9일 오전 11시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노동리 이승복기념관으로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영하의 날씨에 계방산 기슭을 휘감아 도는 칼바람이 뺨을 벨 듯 몰아치고 있었다. 기념관 왼편 이승복 동상 앞으로 모인 60여 명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동상 앞에 차려진 제상(祭床)에 배며 사과며 황태포 등 제수(祭需)를 올리고 빠진 것이 없나 두세 번 살폈다. 의자를 정돈하고 주위에 쌓인 눈을 쓸어냈다.

이들은 군 예비역 단체인 '대한민국 육·해·공군·해병대 예비역 영관장교 연합회'(이하 연합회) 회원들이다. 49년 전 이날 눈 덮인 강원도 두메산골에서 북한 무장공비에 학살된 9세 소년 이승복군의 추모식을 엄수하기 위해 모였다. 정오가 되자 육군 제36사단 장병들이 조총 발사를 위해 동상 앞에 정렬했다. 60여 명이 일제히 착석했다.
 
9일 강원도 평창군 이승복기념관의 이승복 동상 앞에 선 대한민국 육·해·공군·해병대 예비역 영관장교 연합회 회원 60여 명이 제49회 추모식을 마무리하며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9일 강원도 평창군 이승복기념관의 이승복 동상 앞에 선 대한민국 육·해·공군·해병대 예비역 영관장교 연합회 회원 60여 명이 제49회 추모식을 마무리하며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1999년부터 19년간 한 해도 빠짐없이 이승복군의 기일마다 이곳을 찾아 이승복 추모제를 열었다. /박상훈 기자
지난 2014년 뇌경색으로 쓰러졌던 권오강 연합회장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추모식을 주도했다. 연단에 선 권 회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추모사를 읽어내려갔다. "연합회는 지난 19년간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사명감 하나로, 엄동설한에 노구를 이끌고 추모행사를 주관해 왔습니다. 일부 매체의 왜곡된 보도로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지난 2006년과 2009년 대법원에서 이승복 사건이 진실임이 밝혀졌고, 역사의 사실로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어 큰 보람을 느낍니다."

식이 거행되는 동안 회원들의 얼굴에는 만감이 교차했다. 올해가 노병(老兵)들의 '마지막 추모식'이기 때문이다. 연합회는 지난 1999년부터 19년간 한 해도 빠짐없이 기일마다 이승복기념관을 찾아 이승복 추모식을 거행했다. 지난 6월 이승복평화기념사업회가 출범하면서 내년부터 추모식을 맡기로 했다. 김태문 연합회 사무총장은 "19년을 했지만 여전히 못 해 준 것이 많은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고 말했다.

연합회가 이승복 사건 바로 알리기 운동에 나선 것은 지난 1998년이었다. 당시 이승복 사건을 세상에 알린 본지 보도가 왜곡이라는 일부 좌파 매체의 거짓 선동이 기승을 부렸다. 본지는 이승복 사건 이틀 후인 1968년 12월 11일 '잔비(殘匪) 일가 4명 참살'이란 기사를 통해 사건을 세상에 알렸다. 그러나 1992년 일부 좌파 매체가 "조선일보 보도는 작문"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1998년엔 '이승복 오보전시회'를 열어 본지 보도가 허위 조작이라고 선동했다. 그러나 2006년과 2009년 대법원이 "이승복 보도는 진실"이라고 판결하면서 역사적 진실에 대한 법적 판가름이 완결됐다.

허위조작설 논쟁이 수년을 끌면서 강원도교육청이 주관하던 이승복 추모식이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이때 나선 것이 연합회다. 연합회는 "나라 사랑 정신이 훼손되게 놔둬서는 안 된다"며 2009·2011·2013년 3차례에 걸쳐 이승복 사건 자료집 3만권을 발간해 강원도 초등학교와 유관기관에 배포했다. 2009년 41주기 추모식 때는 1968년 남한에 침투한 무장공비 120명 중 한 사람인 김익풍(69세)씨가 식장에 찾아와 유가족인 형 이학관씨의 손을 잡으며 용서를 빌기도 했다.

추모식이 끝날 무렵, 노병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이승복 동상에 마지막 거수경례를 올렸다. 박우식 연합회 부회장은 "이승복군의 진실과 명예는 회복됐으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선 이승복군의 반공정신이 많이 잊힌 것 같다"면서 "이승복 사건이 초등학교 교재에 다시 수록되고 철거된 동상들도 복원돼 후세에도 이승복군의 나라 사랑 정신이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추모식에 참가한 형 이학관씨는 "노병들의 노고를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며 "노병들 덕분에 승복이도 하늘에서 환하게 웃을 수 있을 것"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권 회장은 "노병들은 이제 한발 뒤로 물러나 이승복 역사 복원사업 등에 힘을 쏟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내년부터 추모식을 맡게 된 이승복평화기념사업회는 이승복의 반공정신이 자유와 평화, 사랑의 정신으로 승화되도록 기일 추모식을 비롯해 학술사업과 역사 문화유산 복원 사업 등을 펼칠 방침이다. 김원덕 이승복평화기념사업회장은 "북한은 여전히 대한민국의 안전과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면서 "이승복군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그 정신을 후손에게 알리고 평화와 안보의 정신을 심어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승복 사건

1968년 12월 9일 울진·삼척으로 침투한 북한 무장공비 5명이 강원도 평창에 살던 이승복(당시 9세)군 일가족 4명을 비참하게 살해한 사건이다. 한 무장공비가 승복군에게 "너는 북한이 좋으냐, 남한이 좋으냐" 물었고 승복군이 "나는 공산당이 싫다"며 항거하자 대검으로 입을 찢어 살해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11/201712110017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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