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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北만이 진짜 서울?… 江南에도 두꺼운 시간의 단층이 있다
조선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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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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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풍경] [황두진의 한 컷 공간] 도시의 허파, 선정릉
 

나무 숲 뒤로 들쭉날쭉한 건물의 행렬이 소풍 가는 아이들처럼 보인다. 정면의 녹지는 선정릉이고 배경은 영동대로변의 건물들이다. 2014년 4월 10일에 찍은 사진으로 그 이후 건물 몇 개가 더 저 장면에 합류했다. 눈을 조금만 오른쪽으로 돌리면 롯데 타워가 보일 것이고 바야흐로 지각 변동을 맞이한 영동대로 일대의 앞날은 지금으로서는 가늠하기도 어렵다. 아이들의 키가 성큼성큼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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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王陵) 선정릉을 멀찍이 늘어선 고층 빌딩들이 내려다본다. 예사로 보아 넘기기 십상이었을 이 장면에 서로 다른 시대가 중첩돼 있다. 익숙한 풍경이 새로워 보일 때가 있다. / 황두진

흔히 서울의 역사는 강북에 다 몰려 있고 강남은 불모지라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심지어 '강남이 서울이냐'라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그런데 그것은 조선 위주, 사대문 위주의 사고방식이다. 인간 정주의 역사로 보면 전세는 역전된다.

강북이 아무리 고려의 남경과 조선의 한양을 이야기해도 백제의 하남위례성으로 추정되는 강 건너 풍납, 몽촌 두 토성의 연륜을 당하기 어렵다. 고구려 장수왕이 이 지역까지 진출한 적도 있고 백제가 잠시 회복한 이후에는 신라의 영토가 되었다.

그 이전의 역사도 있다. 면목동의 구석기 유적지가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대표적인 선사시대 유적지가 된 한강 이남의 암사동 유적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임을 내세운다. 선사시대부터, 그 다음으로는 기원 전후부터 사람이 살아온 흔적과 기록을 남기고 있는 터전을 서울이라고 보면, 오히려 그 기원은 강북이 아닌 강남에 있는 것이 아닐까.

서울은 이처럼 한강 이남에서 시작되어,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지금의 사대문 안팎을 새로운 거점으로 삼았다가, 근대에 이르면서 폭발적으로 그 영역을 확대해 온 시간과 공간의 누적체다. 그러니 '강북만이 진짜 서울'인 것이 아니다. 특정 시대만의 서울도 아니고, 서울 토박이만의 서울도 아니며, 심지어 한국인만의 서울도 아니다. 서울은 넓고 깊으며 포용적이다.

서울의 이러한 팽창과 누적의 역사가 잘 드러나는 곳이 사적 199호인 선정릉 일대다. 조선 9대 임금인 성종과 그 계비 정현왕후 윤씨의 능인 선릉, 그리고 성종의 아들 중종의 능인 정릉을 합쳐서 선정릉이라 한다. 흔히 줄여서 선릉이라고도 하는데 정릉을 빼놓은 것이니 중종 입장에서는 아쉬울 것이다.

봉분이 세 개 있다고 삼릉이라고도 하며 테헤란로의 한때 이름이 삼릉로였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성종과 그 계비의 능은 비록 따로 떨어져 있으나 엄연히 하나의 능인 선릉이므로 이를 두 개의 능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게다가 임진왜란 당시인 1593년 왜적이 세 개의 봉분을 모두 파헤쳐 지금 그 안에는 시신이 없다.

이러한 역사와는 별도로 지금의 선정릉은 강남 입장에서는 보물 같은 존재다. 붐비는 도시 한복판에 누구도 감히 개발할 엄두를 못 내는 약 24만8000 ㎡의 거대 녹지가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강북에 종묘가 있다면 강남에는 선정릉이 있다고 할 것인데, 종묘는 약 19만700㎡로 오히려 선정릉이 더 크다. 게다가 종묘 일대는 비교적 저층 지역으로 그 너머 도시와의 대비가 별로 극적이지 않으나, 선정릉의 경우 1972년 11월 26일에 동시 개통된 영동대로와 테헤란로 변의 고층건물군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어 사진에서와 같은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선정릉은 남쪽을 향해 완만하게 경사진 나지막한 구릉지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일대는 원래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저자도리였으나 1963년 서울특별시 성동구로 편입되었고 1975년 강남구로 다시 분리되었다.

이러한 주소의 변천 자체가 서울의 확장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선정릉은 다른 조선 왕릉들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개발 이전의 원지형을 그대로 간직한 장소이기도 하다.

원래 조선 왕릉은 도성, 정확히는 왕궁으로부터 100리 이내에 자리 잡는 것이 원칙이었다. 100리면 40㎞인데 이 정도 거리면 왕이 하루 사이에 다녀올 수 있었다. 여주의 영릉, 현 북한 지역의 제릉과 후릉 등 예외가 일부 있으나 대체로 이 원칙을 따랐고 그래서 대부분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그중에서 서울 시내에 있는 것은 성북구의 정릉과 의릉, 서초구의 헌릉과 인릉(헌인릉), 노원구의 태릉과 강릉(태강릉), 그리고 강남구의 선릉과 정릉(선정릉)이다.

모두 예외 없이 주변에 깊은 숲을 거느린 아름다운 녹지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으나 그 너머의 상황은 저마다 다르다. 이 중에서 그야말로 도시 한복판으로 뛰어든 것 같은 유일한 존재가 바로 선정릉이다. 물론 능은 이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고 그 주변에 도시가 들어선 것이지만, 유독 선정릉만 이런 상황에 놓인 것은 서울의 공간지리적 특성과 관련이 있다.

조선 왕릉의 분포도를 보면 대부분 수도권 북부에 집중되어 있다. 사대문 안이 현재 서울의 북쪽에 치우쳐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물론 서울은 북쪽 방향으로도 확장을 했으나 도시화의 정도는 그 반대 방향인 강남 지역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정릉 일대는 기본적으로 주거지역이며 의릉은 인근에 한국예술종합학교가 들어서 있고 태강릉 일대는 교외 지역에 가깝다. 심지어 같은 강남인 서초구의 헌인릉 또한 산속에 있다. 그러니 수많은 조선 왕릉 중에서 유독 선정릉만 대도시 한복판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 덕분에 강남은 거대한 허파를 하나 갖게 된 것이니 얼마나 다행인가.

한 장 사진 속에 우연과 필연이 뒤섞인 긴 세월의 사연이 담겨 있다. 도시는 인간의 의지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도시는 자체의 에너지로 꿈틀거리는 초(超)생명체다.

※'글 쓰는 건축가' 황두진(54)이 연재를 시작합니다. 직접 촬영한 사진을 통해 건축과 도시, 공간을 이야기합니다. 황두진은 서울 강남대로의 벽돌 빌딩 '원앤원(won&won) 63.5', 스웨덴 스톡홀름 동아시아박물관 한국관을 설계한 중견 건축가입니다.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 '무지개떡 건축' '가장 도시적인 삶'을 비롯해 여러 저서를 펴냈습니다. 일상의 풍경을 꼼꼼하게 카메라에 담아온 '생활 사진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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