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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당시 우리 해군 전폭 지원한 美 대령 흉상 해군사관학교에 세워
조선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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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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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루시 유엔군 韓해군사령관, 상륙함 모아 포항 철수 작전 도와
 

6·25전쟁 당시 '포항 철수작전'을 도와 1만1000명의 목숨을 구하고, 해군 고문단장을 맡아 대한민국 해군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고(故) 마이클 루시(1912~1998) 미 해군 대령의 흉상〈아래 사진〉 제막식이 7일 경남 창원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렸다.
 
1951년 마이클 루시 미 해군 대령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태극무공훈장을 받는 모습.
1951년 마이클 루시 미 해군 대령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태극무공훈장을 받는 모습. /해군
루시 대령은 1933년 미국 해사를 3등으로 졸업했고, 태평양전쟁에 미 해군 최연소 구축함 함장으로 참전해 전공을 쌓았다. 그는 6·25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9일 유엔군 예하 한국 해군 사령관 겸 한국 해군 고문단장으로 부산에 파견되면서 한국 해군과 인연을 맺었다.

해군에 따르면, 루시 대령은 부임 직후 북한군의 해상 보급을 차단하는 한국 해군·해병대 작전을 지휘하고 유엔군 함정들에 대한 군수 지원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특히 1950년 8월 중순 포항에서 국군 3사단이 북한군에 포위되자 2차대전 후 미국 정부가 민간에 양도한 상륙함(LST) 4척을 어렵게 모아 해상 철수작전을 도왔다. 덕분에 3사단 병력 9000여 명, 경찰 1200여 명, 민간인 노무자 1000여 명, 차량 100여 대가 무사히 철수할 수 있었다.
 
고(故) 마이클 루시(1912~1998) 미 해군 대령의 흉상
루시 대령은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소재가 된 '엑스레이 작전'에도 관여했다. 우리 해군 첩보 부대가 연합군의 인천 상륙을 지원하기 위해 인천에 미리 잠입해 북한군 동향을 수집한 첩보 활동이었다. 해군 관계자는 "엑스레이 작전을 지휘하고 인천상륙작전에 한국 해군·해병대가 참전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했다.

루시 대령은 6·25 기간 중 2300t급 호위함(PF), 어뢰정(PT), 구잠함(PC), 구잠정(PCS) 등 전투함과 장비를 미국 정부로부터 무상 양도받는 데도 역할을 했다. 전쟁 발발 당시 해군 보유 함정은 총 36척이었으나 루 시 대령의 도움으로 30척이 추가됐다. 우리 정부는 루시 대령에게 태극무공훈장과 공로훈장을 줬다.

정안호 해사교장(소장)은 흉상 제막식에서 "한국 해군과 해병대 발전에 크게 기여한 루시 대령의 흉상을 세우게 된 것을 뜻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진해 지역 해군 주요 지휘관과 브래드 쿠퍼 주한 미 해군 사령관(준장) 등 양국 해군 장병 100여 명이 참석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08/201712080008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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