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재 스포츠부 기자
김승재 스포츠부 기자

IOC(국제올림픽위원회)가 6일 러시아의 평창올림픽 출전 금지 결정을 내리자 국내에선 올림픽 흥행에 비상이 걸렸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평창은 북한의 도발 위협과 바가지 숙박 요금, 저조한 티켓 판매 등으로 이런저런 상처를 입은 상태다. 이 와중에 동계 스포츠 강국 러시아가 국가 자격으로 출전하지 못하게 되면서 '평창올림픽이 반 토막 났다'는 한탄이 나온다.

올림픽 개최국 입장에선 출전국이 많을수록 좋지만, 국가 주도 도핑으로 스포츠의 공정성을 정면 훼손한 나라의 출전에 목맬 이유가 있는지는 따져볼 문제다. 러시아가 2011년 말부터 2015년 8월 사이에 열린 올림픽과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진행한 조직적 도핑 행각을 보면 평창 출전 금지 조치는 사필귀정이다. 러시아는 올림픽 메달로 '강한 러시아'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선수들에게 강제로 약물을 주입했고, 이를 거부한 선수에겐 "교통사고를 당하고 싶으냐"고 협박했다. 도핑 사실을 은폐하려 정보기관 요원이 배관공으로 위장해 소변 샘플 보관소에 잠입해 약물 선수의 샘플을 바꿔치기했다. 마피아 같은 범죄 집단이나 할 수법이다.

러시아 정부가 도핑을 주도했다는 사실은 WADA(세계반도핑기구)의 보고서와 그리고리 로드첸코프 전 러시아반도핑연구소 소장의 폭로로 명백히 드러났다. 스포츠 정신을 지키려 약물 투입을 철저히 막아 온 나라들을 한순간에 바보로 만든 사건이다. 전 세계 스포츠계의 '반칙왕'이 돼버린 러시아를 평창올림픽 흥행을 위해 참가시킨다는 건 또 다른 반칙이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5일(현지시각) 스위스 로잔에서 IOC 집행위원회 회의가 끝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바흐 위원장은 국가주도 도핑 조작 스캔들을 일으킨 러시아 선수단의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을 금지하고 약물검사 문제가 없는 러시아 선수들에게는 개인자격으로 참가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AP 연합뉴스
러시아의 불참으로 평창올림픽이 반쪽이 된다는 우려도 과장이다. 러시아가 동계 스포츠 강국인 건 사실이다. 2000년대 치른 동계올림픽 성적을 보면 2002 솔트레이크시티 5위, 2006 토리노 4위, 2010 밴쿠버 11위를 거쳐 2014 소치 1위로 점프했다. 그러나 소치가 약물로 얼룩졌음을 감안하면 러시아는 10위권 국가 중 하나일 뿐이다.

평창은 러시아 출전 금지로 반쪽이 된 것이 아니라 명예롭고 빛나는 올림픽을 치를 기회를 맞았다. 스포츠는 협상과 타협 없이 오로지 승자와 패자만 존재하기에 어느 분야보다 공정성이 중요하다. 공정성을 망가뜨린 러시아가 아무 처벌 없이 평창에 출전한다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금메달을 탈취해도 별 탈이 없는' 사례로 스포츠 흑역사를 장식하게 된다. 올림픽의 정의와 권위도 치명상을 입게 된다.

러시아를 제외한 모든 외신과 선수들이 이번 IOC의 결정을 환영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지금부터 평창은 전 세계에 '클린(clean) 올림픽'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한국이 얼마나 공정하게 홈에서 열리는 대회를 관리하는지, 러시아와 수준이 얼마나 다른지 보여줘야 한다. 근대올림픽 창시자 쿠베르탱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정정당당하게 최선을 다하는 일"이라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06/20171206033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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