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이번 방중에서 양국 협력에 역점을 두되
"한류 팔이보다 안보 중요" 원칙하에 국가 自尊 지키고
美·北과 얽힌 안보 현안에 中의 善意 기대하지 말아야
 

김대중 고문
김대중 고문

어느 친구들 모임에서 논쟁이 벌어졌다. 영화 '남한산성'에서 누구의 길이 옳았을 것이냐에 관해서다. 김상헌(김윤석 분)의 척화론(斥和論)과 최명길(이병헌 분)의 주화론(主和論) 간 대립을 두고 한 것이었다. 주화론과 척화론의 대립은 사실 조선의 명맥을 좌지우지해온 사대(事大) 외교의 근간이었으며 오늘날 이 시점까지 한국 외교의 큰 시빗(是非)거리로 작동하고 있다.

오는 13일 중국을 공식 방문하는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안보 현안과 관련해 중국을 어떻게 대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이병헌과 김윤석의 대립' 이상으로 다가올 것이다. 380여 년 전처럼 조선이 죽고 사는 문제의 비중은 아니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의 나라다움을 지키느냐 못 지키느냐는 자존 문제인 것만은 분명하다.

중국은 이미 한국과의 수평적 협조가 아니라 한국 위에 군림하려는 조짐을 보여왔다. 사드 배치와 그에 대한 보복 조치 등은 한국을 왜소하게도 만들고 때로 굴욕스럽게 몰아갔다. 이른바 '3불(不) 약속'을 거론하면서 거기다가 '사드 사용에 제한을 두는' 1한(限)을 덧붙여 한국의 손발을 꽁꽁 묶어버리려 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영향력 행사에서도 번번이 강온 양면을 오가면서 북핵을 옹호하는 것인지 반대하는 것인지 아리송하게 행동해 왔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한국을 미국의 대(對)아시아 방어권 최전선에서 떼어내 중국 대륙권에 편입하려는 속셈을 드러내 왔다.

문 대통령은 짧은 재임 기간임에도 중국의 은밀한 압력과 뒤통수 때리는 술수를 충분히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의 참모들 가운데는 '김상헌'도 있고 '최명길'도 있을 것이다. 시진핑은 이미 '시황제'로 군림해 있고 그 밑에 약삭빠른 왕이(외교부장)도 거느리고 있다. 그런 상황이기에 문 대통령이 중국의 '힘에 의한 강압 외교'에 어떻게 대처할 것이며 우리 내부 이견을 어떻게 해소하느냐가 이번 방중의 관건이다. 문 대통령의 선택과 언명과 행보는 대중(對中) 관계에서뿐 아니라 대북(對北) 관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런 관점에서 문 대통령에게 권고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이번 방중에서는 철두철미 중국과 쌍무적 사항에만 치중했으면 하는 것이다. 두 나라 간 경제 교역과 협력 문제에 역점을 두되 미국, 북한, 그리고 그들과 얽힌 군사·안보 문제 등은 언급하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는 중국은 이미 한·중 관계에 관한 자신들의 입장을 확고히 정해놓고 있으며 그것은 우리가 뭐라고 한들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대고 무엇을 완화해 달라거나 이것을 수정해 달라는 등을 요구하는 것은 쓸데없는 헛수고일 뿐이다. 중국은 자신들이 설정한 '굴기'와 '대국'의 길로 가기로 정해놓는 나라이며 한국과의 문제, 더 나아가 한국의 존재는 그런 큰 장기판에서 졸(卒)에 불과하다.

그 한 예(例)가 이른바 한국의 '3불 약속'이다. '3불'은 우리에게 유리한 것은 하나도 없고 세 가지가 모두 중국에 유리하거나 최소한 불리하지 않은 것뿐이다. 사드 추가 배치가 없고 미국의 미사일 방어 체계에 편입되지 않으며 한·미·일 군사 동맹으로 가지 않겠다는 것은 모두 중국이 요구한 것이고 우리 주장을 반영한 것은 없다. 우리로서는 우리의 주권 내지 국가적 결정권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것은 문 대통령의 방중을 받아주는(?) 대가로 중국이 제기한 것이라는 주장에 일리가 있다. 결국 문 대통령의 방중은 중국으로서는 기존 입장을 재천명하는 기회를 제공하며 우리로서는 자칫 들러리 서 주는 모양새가 되기 십상이다.

우리는 우리의 안보에 관한 한 북한 편이 확실한 중국에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눈에 보이는 환대에 취해서도 안 된다. 방중을 굳이 성공작(作)으로 만들려고도 하지 말았으면 한다. 한국을 미국에서 떼어내려는 것이 중국의 목적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중국에 우호와 선의를 기대할수록 우리만 우스워지고 한·미 동맹 관계만 더욱 허술해질 뿐이다. 그것이 바로 중국의 노림수일 것이다.

중국과 거래하는 데 우리가 취할 태도는 중국의 필요와 이익에 부합하는 상생(相生) 거리를 찾는 것이다. 중국과의 거래에서 우리가 주고받을 수 있는 '품목'을 내고 중국의 이목과 관심을 끄는 일이다. 우리에게는 '한류팔이'보다 사드 안보가 더 중요하니, 선택을 강요당하는 경우 한쪽은 버릴 수밖에 없다 고 나가면 중국은 지금과는 다른 대응을 보일 것이다. 그것이 중국을 상대하는 길이며 작은 나라로서 자존심을 잃지 않는 길이다. 국민을 도탄에 빠뜨리고 인권을 탄압하며 세계를 핵으로 위협하는 독재 왕국 북한을 부러워한 적은 단연코 없었다. 하지만 대북 제재와 관련해 북한 편을 들지 않았다고 해서 중국의 특사를 만나지 않고 돌려세운 북한의 배짱만큼은 부러웠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04/20171204030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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