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무력 완성" 선언]
美·日은 "ICBM"이라는데, 우린 '장거리탄도미사일' 애매한 표현

- ICBM, 文대통령이 말한 '레드라인'
ICBM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대화 통한 북핵 해결은 벽 부딪혀
과거와 달리 트럼프와 빠른 통화… 靑 "美강경대응 막으려 한 측면도"
평창올림픽에 北 참가시키려던 정부 대북 구상도 수정 불가피
 

문재인 대통령은 29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대해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북한의 오판'과 '미국의 선제타격'에 대해 동시에 우려를 표명했다. 또 북한의 미사일을 'ICBM'이라고 명확히 한 미국·일본과 달리 한국 정부는 'ICBM급(級)' '장거리탄도미사일'이라는 애매한 표현을 썼다.

◇ICBM이라면 문 대통령 설정 '레드라인'

미국과 일본은 이날 북한 미사일을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ICBM"으로 규정했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이 ICBM을 발사했다. 솔직히 북한이 이전에 쏜 미사일들보다 더 높게 올라갔다"고 말했다. 미 백악관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일본 총리와 긴급 전화 통화를 한 사진을 공개할 때도 '북한의 ICBM 발사'와 관련한 것이라고 했다.

반면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6시 주재한 국가안전보장회의 (NSC) 전체회의에서 "대륙을 넘나드는 북한의 탄도미사일이 완성된다면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와 국방부 당국자들도 'ICBM급' 또는 '장거리 탄도미사일' 같은 용어를 사용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저녁 한·일 정상 통화를 소개하면서 "북한의 ICBM급 미사일 발사"라고 했다. ICBM이 아니라 '급'이라고 했다. 사거리 등 기술적 진전은 있었지만 대기권 재진입 등 ICBM 완성까지는 몇 가지 단계가 남아 있어 추가 분석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이런 기술적 이유 외에 정치적 고려가 있는 것으로 해석됐다. 북한이 ICBM을 완성했다고 할 경우, 정부의 '외교적 방법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이 벽에 부딪히는 상황에 처하기 때문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文대통령·트럼프, 北도발 당일 통화한 건 처음 -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 직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문 대통령 취임 이후 11번의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있었지만,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도발 당일 통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 정상의 대화는 북한 도발 5시간 만에 이뤄졌으며, 20분 동안 공조 방안을 협의했다. /청와대

문 대통령은 지난 8월 군사적 해결 단계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인 '레드라인'에 대해 "북한이 ICBM을 완성하고, 거기에 핵탄두를 탑재해 무기화하는 것"이라고 답변했었다. 북의 미사일이 ICBM이라면 레드라인 문제가 불거지고 북핵 대응 수단도 달라져야 한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과 정부는 "북한의 탄도미사일이 완성된다면"이라는 가정법으로 평가를 유보하는 것일 수 있다.

◇'미국 선제타격 상황 막아야' 의미는?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11번째인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이날도 "강력히 규탄한다. 북한의 도발을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아베 일본 총리와 이날 전화 통화를 하면서는 "북의 안보 위협을 더 이상 묵인할 수 없다"며 "다음 달 중국 방문 때 시진핑 주석에게 더욱 강력한 역할을 요청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지난 10번의 미사일 도발과 달리 이번에는 미국의 '선제타격'도 처음으로 공개 언급했다. 그동안 문 대통령은 선제타격 대신 '전쟁 반대' '평화' 같은 단어로 선제타격 반대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이날은 "북한이 상황을 오판해 우리를 핵으로 위협하거나 미국이 선제타격을 염두에 두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며 북한과 미국에 대한 우려를 병렬형으로 말했다.

문 대통령 발언은 미국의 선제공격이 현실화될 수 있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고 보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스스로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아야 한다는 경고 의미도 담겨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북한이 그런 상황으로 가면 안 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의 오판'과 '미국의 선제타격'을 같은 차원의 우려로 표현한 것이 적절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 전직 고위 외교관은 "'북한이 우리를 핵으로 위협하는 상황을 막아야 하며, 국제사회가 선제적 대응에 나설 상황을 북한은 더이상 만들면 안 된다'는 식으로 표현해야 했다"고 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한·미 정상 간 통화와 관련해 '미국이 강경하게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빨리 소통했나'라는 질문에 는 "그런 측면이 있다"고 답했다.

북한이 75일 만에 다시 도발을 재개하면서 '북의 도발 중단→대화 모색→북의 평창올림픽 참가'라는 정부의 대북 대화 구상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정부 일각에서는 북한이 도발을 중단하면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미 연합훈련을 일시 중단·연기하자는 '변형된 쌍중단'도 검토됐지만, 이번 도발로 전제 자체가 성립할 수 없게 됐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1/30/2017113000294.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