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석 미래기획부 차장
최우석 미래기획부 차장

나는 1990년대 초 맹호부대에서 정훈장교로 군 복무할 때 김관진 전 장관을 상관으로 모셨다. 여단장이었던 그는 가끔 정훈·군종·법무장교를 관사로 불렀다. 저녁 먹으며 세상 이야기하기를 즐겼다.

1992년 초였던 걸로 기억한다. 노태우 정권은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었다. 김 여단장은 당시 군 최고 수뇌부가 병사들에게 여당에 투표하도록 정신교육했으면 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고 걱정했다. 며칠 후 사단장과 영관급 이상 사단 주요 간부 20여 명이 여단장실에 모여 군 부재자투표소 운영 방침에 대한 회의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김 여단장은 육군 중위에 불과한 나를 회의실로 불렀다. 사단장에게 일선 정훈장교의 입장을 설명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사단장에게 "그런 정신교육은 군의 정치 중립 위반이며, 병사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여단장은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지켜봤고, 사단장은 곧바로 "절대 개입하지 말라"고 엄중 지시했다. 그 결정이 옳았다는 것은 그해 3월 다른 사단의 한 육군 중위가 군의 선거 중립 위반에 대해 폭로하면서 입증됐다.

그가 92년 여름 이임할 때 나는 예하 부대 정훈장교를 대표해 꽤 좋은 선물과 함께 조선 후기 문신(文臣)인 이정보의 시 '국화야 너는 어이'를 편지에 써서 전달했다.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동풍 다 지내고/ 낙목한천에 너 홀로 피었는고/ 아마도 오상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 서릿발이 심한 추위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홀로 꼿꼿하게 피는 국화처럼 참군인이 되어 달라는 의미에서였다. 그는 편지만 간직하고 선물을 부대 역사박물관에 보관하라며 돌려보냈다.

구속적부심에서 석방이 결정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22일 밤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와 차량에 탑승해 있다. /연합뉴스
3군 사령관이던 그가 휴가 나와 만났을 때 일도 생각난다. 그는 "휴가 중에는 운전병을 쓸 수 없다"며 경호원도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내가 모실 때 그는 일과 후 운전병 겸 당번병을 본부 중대로 돌려보내는 윗분이었다.

그는 60만 우리 국군을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장군이다. 우리 사회가 의무 복무하는 젊은 병사들의 기강이 해이해졌다고 우려할 때 그는 반박했다. 민주 사회에서 자란 병사들에게 온당한 작전 명령을 내렸을 경우 북한군을 압도하는 놀라운 전투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2010년 연평도 포격 사건 당시 우리 장병이 북한에 대응 사격한 점이나, 1996년 무장 공비 잠수함 침투 사건 당시 완전 토벌한 사건 등을 예로 들었다. 국방장관 시절 북한이 도발하면 일부러 휴전선을 방문해 TV 앞에 나서서 부 리부리한 눈으로 북녘 땅을 응시했다. 북한이 제일 무서워했던 인물이 바로 그였다.

그런 그가 댓글 대응을 지시해 군의 정치 중립을 위반하고 호남 사람을 쓰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가 지난 22일 구속적부심으로 풀려났다. 구속돼 재판을 받아야 하는 그를 보고 북한 지도부는 쾌재를 불렀을 것이고, 구속에서 풀려난 뉴스를 보고는 아쉬워했을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1/23/201711230324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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