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A 귀순' 영상 공개] JSA 귀순 '44분 드라마'

귀순병, 지프차 몰고 南으로…
판문점 배수로에 바퀴 빠지자 車 버리고 자유의집 향해 질주
따라온 北 4명, 40발 총알 세례
귀순병, 우리 구역에 쓰러진 후 한국군 경비대대장 엄호 속
부사관 2명이 포복 구출작전
 

 
유엔군사령부가 22일 공개한 CCTV와 열상감시장비(TOD) 화면에는 지난 13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일어난 북한군 귀순 사건 당시 상황이 모두 담겨있었다. 귀순병이 간발의 차로 북한군 추격조를 따돌리고 전력 질주하는 장면, 추격조가 귀순병 등 뒤에서 10초간 조준 사격을 퍼붓는 모습, 총상을 입고 쓰러진 귀순병을 우리 JSA 경비대대원들이 구출하는 상황들이 확인됐다. 이날 유엔사가 공개한 영상은 총 6분 57초 분량으로, 6개의 별도 영상을 시간순으로 편집한 것이다.

지프 몰고 귀순 시도

오후 3시 11분. JSA에서 북서쪽으로 2.5㎞ 떨어진 북한 지역에서 JSA 방향으로 달리는 지프 차량이 우리 측 CCTV에 포착됐다. 속도는 시속 65~70㎞였다. JSA의 북측 관문 격인 '72시간 다리' 옆 북측 초소 앞에서 잠시 속도를 줄이는 듯하던 지프는 북한군 초병이 뛰어나오자 다시 속도를 냈다. 다리를 건넌 지프는 판문점 북측 시설인 통일각과 김일성 친필비를 지나 크게 우회전을 했다. 지프는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계속 내려오다 갑자기 멈춰 섰다.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나무 사이로 빛나는 지프의 전조등이 크게 흔들렸다. 배수로에 바퀴가 빠진 것이다. 이때가 3시 13분. 지프가 멈춘 지점은 중립국감독위원회(중감위) 회의실 건물과 북측 초소 사이로, 군사분계선(MDL)을 10여m 앞둔 지점이었다.
 
'JSA 귀순' 영상 공개
3시 14분. 사태를 파악한 북한군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판문각 계단에 서 있던 북한 군인 2명과 판문각 동쪽 초소에 있던 북한군 2명이 사고 지점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2명은 권총, 2명은 AK-47 소총으로 무장한 상태였다.

군사분계선 넘어 전력 질주

3시 15분 배수로에서 빠져나오려 애쓰던 지프 운전자(귀순병)가 차를 버리고 MDL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거의 동시에 판문각과 초소에서 달려온 북한군 추격조 4명이 귀순병 바로 등 뒤에서 사격을 시작했다. 소총을 든 북한군 중 1명은 엎드려쏴 자세로, 다른 1명은 무릎쏴 자세로 조준 사격을 했다. 합참에 따르면 이때 북한군은 40여 발을 쐈다. 귀순병은 빗발치는 총탄 속에 MDL을 넘어 우리 측 자유의집을 향해 약 9초간 전력 질주했다. 추격조의 사격도 9~10초간 계속됐지만 귀순병이 총에 맞아 비틀대거나 쓰러지는 모습은 CCTV에 잡히지 않았다.
 
'JSA 귀순' 영상 공개

귀순병이 CCTV 시야에서 사라지자 북한군도 사격을 멈췄다. 귀순병이 총에 맞아 쓰러지는 모습을 봤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어 엎드려 쏘던 북한 병사가 일어나 귀순병을 쫓아 남쪽으로 달리다 멈칫하더니 황급히 되돌아갔다. MDL(중감위 건물 중앙) 월선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것이다. 귀순병이 MDL을 넘은 뒤에도 북한군이 사격을 계속한 행위, 추격조 1명이 MDL을 넘은 행위는 정전협정 위반이다.

3시 17분 판문각 서측 김일성 친필비 앞에 소총을 든 방탄복 차림의 북한군 병사 12명이 집결했다. 이들은 대열을 갖추지 않은 채 우왕좌왕하다가 북쪽에서 간부로 추정되는 군인이 내려오자 그를 따라 북쪽으로 이동했다. 유엔사 측은 이들을 '신속대응군'으로 표현했다.

총상 입고 쓰러진 귀순병

3시 43분부터 시작하는 다음 CCTV 영상엔 총상을 입은 귀순병이 낙엽이 수북이 쌓인 땅바닥에 쓰러져 있다. 화면 뒤에 보이는 시멘트 구조물은 자유의집 서측 부속 건물 담장이다. 귀순병은 한쪽 발에 양말만 신고 있다. 전력 질주 과정에서 군화가 벗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귀순병이 MDL을 넘은 시각은 3시 15분, 우리 군이 쓰러져 있는 그를 발견한 건 3시 31분이었다. 16분 동안 귀순병을 놓친 이유에 대해 그동안 군은 "귀순병이 쓰러진 지점이 CCTV의 사각지대라 추가 장비를 동원해 수색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설명했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다. 이날 유엔사가 공개한 CCTV 화면 중에는 쓰러져 있는 귀순병이 보였기 때문이다. 군 측은 "낙엽과 섞여 있어서 발견이 늦어졌다"고도 했다.

포복 구출 작전

귀순병이 쓰러진 곳의 열상감시장비(TOD) 화면도 공개됐다. 3시 55분부터 시작하는 이 영상에 따르면 한국군 경비대대장을 포함해 우리 군 간부 3명이 귀순병을 향해 포복으로 다가갔다. 경비대대장이 도중에 포복을 멈추고 엄호·지휘하는 가운데 부사관 2명이 귀순병을 안전지대로 끌고 왔다. 귀순병이 쓰러진 곳은 지프에서 내려 뛰기 시작한 지점으로부터 60m 떨어져 있었다. 자유를 향한 60m 질주였다.

☞72시간 다리

북한 병사 오모씨가 차량으로 넘어온 ‘72시간 다리’는 판문점 서쪽을 흐르는 ‘사천(砂川)’에 있는 다리다. 북한은 1976년 8월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이후 자신들이 72시간 만에 건설했다고 해서 이 같은 이름을 붙였다. 판문점에 군사분계선(MDL)이 그어지기 전까지 북한군은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이용했다. 그러나 도끼 만행 사건 이후 판문점에도 MDL이 그어지고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MDL 남쪽에 위치하게 되자 북한군은 이 다리를 만들었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1953년 휴전협정 체결 후 포로 교환이 이뤄졌던 곳으로, 한번 넘어가면 돌아올 수 없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김일성 친필비

유엔사가 공개한 CCTV 영상에 는 오씨가 운전하는 차량이 ‘김일성친필비’ 앞을 지나 급하게 우회전하는 모습, 북한군 10여 명이 김일성친필비 앞에 모여 있는 모습 등이 담겨 있다. 친필비에는 김일성 친필 서명과 함께 ‘1994. 7. 7’이라는 일자가 새겨져 있다. 김일성이 사망 하루 전날 통일회담 관련 문건을 보고난 뒤 서명한 것으로, 그의 마지막 필적을 새겨 기념비로 만든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1/23/201711230027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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