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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병사 쓰러진 뒤에도 총질, '통일 후 끝까지 단죄' 선언을
조선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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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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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에서 탈북하다 총상을 입은 북한 귀순병을 치료 중인 이국종 아주대 중증외상센터장은 그제 "뒤에서 맞은 총알이 골반을 부수고 들어가 45도 각도로 위로 향하면서 소장을 으스러뜨리고 위쪽 복벽(배근육)에 박혔다"며 "쓰러진 상태에서 맞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북한군은 귀순병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쓰러진 후에도 확인 사살하듯 총질을 했다는 의미다.

체제가 싫다고 떠나는 사람들의 등 뒤에서 쏴 죽이는 것은 문명사회에선 상상할 수 없는 범죄다. 베를린 장벽 28년간 동독을 탈출하다가 사망한 주민은 584명이었다. 이 중 369명은 국경수비대가 정조준한 총에 맞았다. 베를린 장벽에서만 126명이 사살됐다. 통일 후 독일은 동독의 과거 범죄에 비교적 관대했지만 국경수비대 발포에 연루된 사람은 말단 병사부터 최고 지도부까지 예외 없이 법정에 세웠다.

그 재판은 마지막 발포 희생자였던 크리스 게프로이의 죽음에 대한 책임자를 찾으면서 시작됐다. 게프로이는 1989년 2월 베를린 장벽을 넘다가 10발의 총을 맞고 숨졌다. 1991년 기소된 국경수비대원들은 법정에서 "당시 동독 법과 규정을 따른 것"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자유를 찾아가는 동료 시민을 향해 37m라는 짧은 거리에서 상체를 정조준한 것은 처형이나 다름없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독일은 발포 명령자를 찾기 위해 동독 공산당 문서를 샅샅이 뒤졌으며 1974년 당 안보 담당이던 에리히 호네커가 "가차 없이 총포가 사용돼야 한다"고 발언한 것을 확인했다. 동독 최고 지도자였던 호네커가 기소된 것은 이 발포 명령 때문이었다. 국방장관과 총 사령관도 살인 교사죄로 중형을 선고받았다. 독일은 이 문제로 246명을 재판에 회부해 132명에게 유죄를 내렸다.

북·중 국경을 넘다가 총격을 당했다는 탈북자 증언은 쉽게 들을 수 있다. 주민을 노예로 짓밟으면서 탈출하면 등 뒤에서 총을 쏜다. 정부는 '통일 후 탈북민에 대한 조준 사격만은 끝까지 처벌한다'고 선언해야 한다. 북 주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1/16/201711160374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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