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9일 미·중 정상회담과 기자회견이 끝나자 이번 아시아 순방에 동행한 백악관 출입기자들에게 긴급 이메일이 왔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의 이번 정상회담 관련 브리핑이 있을 것'이란 내용이었다. 안전문제로 약 한 시간동안 기자실을 완전히 비우고 보안 검사도 했다. 기자실 앞엔 금속탐지기 등 각종 장치가 설치됐다.

오후 3시반으로 예정됐던 틸러슨 장관의 브리핑은 5시쯤에야 이뤄졌다. 브리핑에선 사진을 찍을 수 없고, 음성녹음만 가능했다. 새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이 직접 나와 질문자들을 지정했다. 샌더스 대변인은 지금껏 정상회담에만 나와 질문자를 지정했었다. 그만큼 정상회담 배경 브리핑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날 브리핑은 22분 정도 이뤄졌다.
 
9일 오전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중 환영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과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 등 미국 방문단이 행사장으로 나오고 있다./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첫날인 지난 5일 오후엔 브리핑엔 익명을 요구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고위 관계자가 나왔었다. 이 때의 진행은 NSC의 홍보국장이 진행을 담당했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일본 방문의 의미와 한·미·일 삼각협력, 북한의 위협 등에 대해 솔직하게 답변했다. 이 브리핑은 30분 정도 이뤄졌다

한국에서도 백악관이나 국무부 고위 관계자의 정상회담 브리핑이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한·미 정상회담일인 지난 7일 밤 백악관 임시 기자실이 설치된 서울 신라호텔에 자리를 지켰다. 일본 기자들은 "보통 새로운 나라에 가면 주요 일정이 끝나면 브리핑을 한다"며 "오늘 밤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신라호텔에 마련된 기자실에 있던 백악관 직원들도 "특별히 연락은 없었지만, 브리핑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밤 10시가 되자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브리핑에 대비해 자리를 지키던 기자들도 하나 둘씩 자리를 떴다. 밤 11시가 되자 기자 정도만 남았고 대부분 들어갔다. 물론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국빈만찬이 밤 10시에 끝나, 백악관에서 따로 브리핑을 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을 수 있다. 다음날 트럼프 대통령은 국회 연설과 국립묘지 참배 뒤 바로 중국으로 떠났다.

한국은 1박2일 방문으로 모든 행사에서 시간이 촉박했다. 그러나 한반도의 운명이 걸린 순방임에도 한국에선 간단한 현장 브리핑조차 받을 수 없었다는 점은 아쉬울 수밖에 없다. 7일 밤 11시, 신라호텔 기자실에서 이번 순방에 동행한 유일한 한국 기자로서 느낀 자괴감과 쓸쓸함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같다.

그러다 8일 저녁 백악관에서 온 이메일에는 '백악관 고위 관계자'가 서울에서 중국으로 이동하는 비행기에서 16분간 한국 방문의 의미를 설명했다고 나왔다. 내용은 지난 5일 일본 방문에서 했던 말과 큰 차 이가 없었다.

식민지를 겪고, 6·25를 거친 기구한 운명의 나라지만, 아직도 대한민국의 운명은 강대국 손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번 순방이 가르쳐준 냉정한 진실이었다. 그리고 강대국 사이에 낀 한반도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이란 것도 받아들여야 했다. 이럴 때일수록 감정이 아니라, 차가운 이성과 냉철한 분석으로 대한민국의 운명을 지켜야할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1/10/201711100071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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