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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식]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순한 양'이 된 것일까
조선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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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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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 방한 때 한·미 정상이 머리 맞대고 대화한 것은 1시간 남짓… 동맹 과시하는 행사에 집중
반면 美·日, 美·中 정상은 북핵 놓고 장시간 밀담
 

박두식 부국장
박두식 부국장

'실패한 정상회담은 없다.'

어제 한국 방문을 마치고 중국으로 떠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보면서 떠올린 외교의 속설(俗說)이다. 정상회담은 분(分) 단위, 초(秒) 단위 일정까지 서로 협의를 거친다. 회담에서 다루게 될 주제와 발언 수위, 표현도 대개 사전에 의논하는 것이 외교 관례다. 깜짝 일정, 즉석 합의는 정상회담의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미리 공개하지 않았다는 뜻이지 정말 예정에 없던 일이 벌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25시간여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방한(訪韓)은 한·미 간에 치밀하게 조율된 외교 행사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은 12일에 걸친 아시아 5개국 순방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일본에서 시작해 한국을 방문하고 중국을 찾는 순서다. 미국 언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가장 편한 방문지는 일본이고, 중요도가 가장 높은 곳은 중국이다. 대신 한국은 '가장 어려운 회담이 될 곳'으로 꼽는 전문가들이 꽤 있었다. 커트 캠벨 전 국무부 차관보가 대표적인 경우다.

그러나 엊그제 청와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은 어려운 협의를 하기에는 절대적 시간이 부족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시간은 모두 합쳐 55분이었다. 두 정상 간 단독 회담 25분, 두 나라 장관과 보좌진이 동석한 확대 회담 30분이었다. 5분 남짓한 청와대 경내 산책까지 합쳐도 두 정상이 본격적인 대화를 나눈 시간은 한 시간 남짓했다. 그 결과인지 한·미 정상회담이 최대 현안인 북핵에 대해 내놓은 해법은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는 수준에 그쳤다.

한·미는 대신 두 정상이 함께 동맹의 건재함을 과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첫 방한 일정인 평택 미군 기지를 찾아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미군 장병들을 만난 것이나 중국발(發) 황사 때문에 성사되진 못했지만 한·미 정상이 함께 DMZ(비무장지대)를 찾으려 했던 것 등이 이런 목적에서 마련된 무대들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방한 행사를 반긴 듯하다. 그는 트위터에 문 대통령이 자신을 위해 마련한 '아름다운 환영식에 감사한다'는 글과 4분 남짓한 환영식 동영상을 함께 올렸다. 한국 정부가 꼭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도 마다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과 함께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반도 문제에서)한국을 건너뛰는(skip)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 오후 청와대 접견실에서 확대 정상회담 전에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방한 기간 중 평소와 달리 돌출 발언이나 자극적 표현을 삼갔다. '한·미 FTA 폐기'나 '대북 무력 사용' 같은 말이 나오지 않았고, 북한 김정은을 조롱하거나 위협하는 표현도 거의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순한 양(羊)'이 된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이것은 청와대와 백악관이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행동의 목록(Not to do list)'을 사전에 협의한 결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원하는 한·미 FTA 협상, 미국 무기 구매, 방위비 분담 등 외교 난제(難題)들은 가까운 장래에 차례로 몰려올 가능성이 크다. 북핵 해법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 정부 관계자들은 트럼프 방한을 앞두고 일본과 비교되는 것에 거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일본에선 이랬는데…' 하는 식의 비교가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자기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논리였다. 문재인 정부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과거 정부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다. 미국 내 한국 전문가들도 '한국은 왜 일본·중국 정상과 어디서 몇 시간 동안 무엇을 했느냐'를 기준으로 삼아 그보다 더 나은 대우를 요구하는 형식에만 매달리느냐고 지적하곤 했다. 맞는 말이다. 그렇다 해도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이 앞선 일본 방문과 뒤이은 중국 일정보다 형식을 뛰어넘는 내실을 기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잠자는 시간을 빼곤 2박3일 내내 함께 다녔던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연이은 밀담과 회담을 거쳐 나온 말이 '미·일은 북핵 문제에서 100% 의견을 같이한다'는 것이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첫날 중국 특유의 '역사 여행'으로 이끌었다. 베이징 시내 자금성 안에 있는 삼희당과 건복궁에서 두 정상은 4시간 가까이 함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자신이 소유한 미국 플로리다주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시 주석과 5시간 가까이 밀담을 나눈 뒤 "한국은 (역사적으로)사실상 중국의 일부였다"고 했었다. 트럼프 이전에 건복궁에서 중국의 환대를 받았던 미국 인사는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다. 그는 북핵 해법으로 '미·중간 통 큰 밀약'을 주장하는 트럼프의 외교 멘토다. 트럼프 방한 행사가 별 탈 없이 끝난 것에 안도하기에는 한국을 둘러싼 주변 강국의 외교가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1/08/201711080367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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