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들 논리와 전략 앞에서 약소국은 한 조각 卒일 뿐… 누구에게 붙느냐가 생존 좌우해
中은 南과 친해져도 北 안 버려
美와 우호 유지하며 군사력 키워 北 제어하는 것이 우리가 살 길
 

김대중 고문
김대중 고문
한반도에 '전쟁과 평화'의 위기가 닥쳐올 때마다 떠오르는 두 가지 일화가 있다. 하나는 6·25전쟁이 발발한 지 두 달이 지난 1950년 8월 27일 소련의 스탈린이 체코 대통령 고트발트에게 보낸 메시지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소련)가 전쟁 당일 (뉴욕 시각으로는 6월 27일) 유엔 안보리에 불참한 이유는 네 가지다. 첫째 소련과 중국의 단결을 과시하기 위해서다. 둘째는 중국의 진정한 대표인 새 중국(마오쩌둥) 대신 국민당 괴뢰정권(장제스)을 인정하는 미국의 우매함과 부당함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셋째는 두 강대국의 불참으로 안보리 결정을 무효화하기 위해서다. 넷째는 미국이 안보리의 다수결을 이용해 우매한 결정을 감행함으로써 여론(세계 여론)이 미국의 참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메시지의 주된 목적은 다른 데 있음을 스스로 밝혔다. '미국을 극동의 전쟁에 끌어들이고 거기에 묶어둠으로써 미국이 유럽의 공산화에 개입할 시간적·물질적 여지를 빼앗는 데 있다. 그것은 또한 미국이 중국과 싸우느라고 3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여유가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스탈린은 미국과 거대한 군사력을 가진 중국이 패권 다툼으로 서로의 힘을 소진하는 것을 즐거운(?) 시각으로 보고 있음을 은근히 내비치고 있다.

두 번째의 이야기는 1972년 미국과 중국의 국교 정상화 협의 과정에서 있었던 닉슨 미국 대통령과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의 북경 회담 대화록이다(키신저 국무장관 배석). 저우언라이가 "남북 접촉을 누가 촉진하고 남북통일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는 결국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문제"라고 하자 닉슨은 이렇게 말했다. "남(南)이든 북(北)이든 한국인은 감정적으로 충동적인 사람들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충동적이고 호전적인 사람들이 우리 두 나라를 곤궁에 빠뜨리는 사건들을 일으키지 않도록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한반도가 우리 두 정부(미·중) 간의 갈등의 장(場)이 되는 것은 어리석고 불합리한 일이다. 한 번 그런 일이 있었다(6·25를 의미). 다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논리와 전략 앞에서 속수무책임을 깨닫는다. 우리는 그들의 장기판 위에 놓여 있는 한 조각의 졸(卒)일 뿐이고 그들이 세계를 요리하는 데 있어 이리저리 휘둘리는 작은 도구에 불과하다. 그것은 우리뿐 아니라 모든 약소국에 공통된 운명일 것이다.

문제는 그런 강대국 관리 체제하에서 대한민국이 살아남는 길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첫 번째 옵션은 한반도에서 '원하지 않는' 싸움에 말려들게 되는 경우다. 세계를 제3차대전의 양상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미·중은 그것을 결코 원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종잡을 수 없는 허풍 정치의 와중에도 미국은 미·중의 '한반도 공동 관리'라는 닉슨·저우언라이 라인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하고 있음을 본다. 트럼프는 중국 공산당 전당대회의 종료와 시진핑의 권력 강화를 기다리는 동시에 미·중 한반도 공동 관리 주창론자인 키신저를 백악관에 불러 훈수를 받는 모습을 내보이며 시진핑의 호응을 유도했다. 권력을 강화하고 안정기에 들어선 시진핑도 미국과의 충돌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 옵션은 남북한 공동 관리에 한계를 느끼고 한반도에서 서로 발을 빼는 것이다. 특히 미국이 한국의 이중 플레이에 식상하고 일부 세력의 반미운동에 환멸을 느끼며 한국에서 철수하는 상황을 예견할 수 있다. 문 정부는 최근 ①사드 추가 배치를 검토하지 않으며 ②미국의 MD(미사일 방어 체계)에 참여하지 않고 ③한·미·일 3국의 안보 협력을 군사동맹화하지 않을 것임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친중원미(親中遠美) 정책으로 비치기 십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설 자리는 그리 넓어 보이지 않는다. 미국이 빠진 상황에서는 군사력은 차고 넘치는데 경제는 빈약한 북한의 '힘'이 군사력은 상대적으로 약하고 경제는 먹음직한(?) 한국 쪽으로 흐르게 되는 것은 자연적인 삼투작용의 원리가 아닌가. 북한은 그동안 저들이 '핵과 미사일'에 공들이느라고 놓친 만큼의 대가를 요구하며 '전쟁 불사'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한국은 그동안 얻은 것에 연연하며 오로지 '평화'만 외치고 있다.

약소국이 살기 위해서는 어느 쪽에 붙느냐가 관건이다. 우리가 아무리 다가가도 중국은 북한을 절대 버리지 않는다. 결론은 미국과의 우호를 견지하며 시간을 벌면서 군사력(그것이 핵이든 핵 억지력이든)을 키워 북한을 제어하는 것이 우리로서는 최선이다. 그것은 이념의 문제도, 자존심의 문제도 아니다. 생존의 문제다. 우리가 미국 쪽에 붙어 있는 한 최소한 중국은 우리를 어쩌지 못할 것이며 북한은 쉽게 군사력을 남하(南下)시키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로서는 미국과 '같이 가는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1/05/201711050169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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