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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훈] 한국 무시하는 나라들엔 있는데 우리에겐 없는 것
조선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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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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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울 決意 없는 나라가 평화 지키는 방법은 싸울 決意 가진 나라의 노예 되는 것뿐
決意 없어 무시당하고 북핵 못 막는 것

양상훈 주필
양상훈 주필

한·중 사드 갈등 합의의 밑바닥에는 '한국 무시'가 흐르고 있다고 느낀다. 시진핑이 미국 대통령에게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했을 때의 그 '무시'다. 있지도 않은 중국의 피해에 대한 우려는 유념하고, 지금 당장 핵 인질이 돼 사드를 배치할 수밖에 없는 한국인 5100만명의 안위에 대한 유념은 없는 게 이 합의다. 한·중 관계는 이렇게 등급과 서열이 정해져 가고 있다.

일본은 '한국에 언제까지 사과해야 하느냐'고 하지만 그들 속마음엔 '사과'가 없다. 사실 사과하고 싶어 사과하는 나라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독일이 사과할 수밖에 없는 것은 사과하지 않으면 큰 화(禍)를 입힐 수 있는 나라들이 독일의 상대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한국을 그런 상대로 보지 않는다. 이게 한·일 관계의 본질이다.

첫 북핵 위기가 발생한 1994년 미·북이 마주앉은 제네바 회담 때의 일을 한 분이 이렇게 전했다. 들러리 신세가 된 우리 정부는 현지에 파견된 외교부 관리들에게 한국 체면을 살릴 조건들을 관철하라고 닦달했다. 우리 측이 미국 측 인사에게 이를 요구했더니 그는 "당신들 대통령은 안보도 모르면서 신문 헤드라인 보고 정치한다"고 한바탕 욕을 했다. 그러더니 "좋다. 동맹국이 반대하니 협상을 깨겠다. 대신 내일부터 전쟁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며 미군이 어떻게 움직일지에 대해 언급했다.

이 사실을 서울에 보고했더니 '정면 대응한다'는 지시가 왔다. 그런데 지시를 자세히 읽어 보니 미국과 북한에 정면 대응한다는 게 아니라 국내 언론에 정면 대응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미국이 군대를 움직이고 전쟁 날지 모른다니까 바로 꼬리를 내리고 국내 언론의 비판 보도를 막겠다는 게 우리 정부였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다 본 미국인들이 한국을 어떻게 생각했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한국이 어느 정도 커졌다고 하지만 국제사회에서 '코리아'라고 하면 '노스'(North)가 더 '유명'하다고 느낄 때가 적지 않다. 물론 악명이지만 어쨌든 언급되는 빈도가 더 높다. 국제 정치 변수로서는 '노스 코리아'뿐인 듯한 상황도 자주 발생한다. 북은 자신보다 경제력이 100배 이상 더 큰 한국을 아예 상대로 취급도 안 한다.

우리는 북핵을 막지 못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 이렇게 무시당하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 우리를 무시하는 다른 나라들은 우리에게 없는 것을 갖고 있다. 심지어 북한조차 갖고 있는데도 우리가 못 가진 그것은 바로 '결의'(決意)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국민적 결의가 어떤 것인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중국도 대일(對日) 전쟁, 국공 내전과 6·25 참전을 통해 국민적 결의를 모으고 보여주었다. 북한도 죽기 살기의 결의로 북핵 게임을 여기까지 끌고 왔다. 이 판에서 결의는커녕 손가락 하나 안 다치려고 눈치를 보고 있는 측은 한국뿐이다.

6·25 때 나라를 보존한 것도 우리 힘이 아니었고 그 이후에 전쟁을 막은 것도 우리 힘이 아니었다. 한·미 동맹은 오늘의 한국 발전을 가져왔지만 우리에게서 국가의 가장 중요한 정신적 바탕인 '결의'가 사라지게 만들었다. 가장(家長)이 아닌 다른 남자가 지켜주는 집의 식구들은 외적에 대해 '내 팔을 내주고 네 심장을 찌르겠다'고 달려들 수 없다. 그 집 식구들이 아무리 좋은 옷 입고 좋은 음식 먹어도 누구도 그들을 존중하지 않는다.

미국의 일방적 핵 정책에 대해 서독 등 유럽국들과 한국의 대응은 판이했다. 유럽국들은 '미국의 핵우산을 믿을 수 없다'고 선언했다. '미국이 우리 핵무장을 막겠다면 우리가 미국 핵을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해 관철했다. 그 결과 유럽엔 미국 전술핵이 남았고 유럽국들도 이 전술핵 사용에 일정 부분 관여할 수 있게 됐다. 우리는 미국에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전술핵의 철수를 지켜만 보았다. 우리가 잃은 것은 전술핵이라는 억지력이고 얻은 것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 선언이란 사기 문서였다. 무슨 차이인가. 유럽국들에는 결의가 있었고 우리는 없었다. 1994년 미국이 북핵 시설 폭격을 결정하고 우리가 동의했으면 폭격 없이 북핵 문제가 끝날 수 있었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결의'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북은 이를 꿰뚫어보고 있다.

임진왜란 이후의 조선은 싸움을 포기한 나라였다. 싸움을 포기한 나라가 평화를 지키는 방법은 싸울 결의를 가진 나라의 노예가 되는 것뿐이다. 조선은 중국의 발아래 있다가 일본의 노예가 됐다. 지금 정부는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안 된다'고 한다. 김 정은이 핵으로 우리를 깔고 앉아도 전쟁은 안 된다는 것이다. '김정은에게 돈 주고 목숨을 연명하자'는 얘기다. 모두가 죽기 싫고 살고 싶다. 그런데 정말 돈 줄 테니 살려 달라고 하면 살려줄까. 살려고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는 것은 영화에나 나오는 대사인가. 그래도 우리 정치인들은 오늘도 국민의 결의를 모으는 것이 아니라 깨는 데 열중하고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1/01/201711010304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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