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김대중 대통령의 특사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하기에 앞서 미국과 뉴욕에서 대사급 접촉을 갖고 대미(對美) 대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의 대화수용 태세가 근본적인 자세 변화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상황 탐색용인지는 여전히 분명치 않다.

지금 남북한, 그리고 미·북 간에는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들이 이리저리 뒤엉켜 있다. 구체적 현안들의 해법찾기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서로가 상대를 바라보는 인식이 일정한 안정성을 찾지 못한 상태이며 그것이 상호관계의 불안한 변화까지 초래하고 있는 양상이다. 이럴수록 진정하고도 정당한 의미의 대화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의 포기뿐만 아니라, 나아가 체제변화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인권개선 같은 기본적인 문명적 기준을 구현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북한은 미국이 자신들의 최고지도부를 ‘모욕’하면서 체제 자체를 흔들려고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내비쳐 왔다. 한국의 현 정부는 이 같은 미·북 갈등이 한반도 위기상황으로 치닫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판단해 대북특사를 파견한다는 설명이다.

이런 주변환경 속에서 북한이 어떤 상황인식으로 어떤 대응전략을 마련하고 있는지는 오는 3일로 예정된 임동원 특사의 평양행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파악될 것으로 기대된다. 북한을 대화로 이끌어내기 위한 한·미 간의 사전조율도 여러 채널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런 시점에서 강조돼야 할 것은, 대화의 장(場)이 마련되는 것 자체가 전부인 것이 아니라, 그것이 겉만 번드르르한 ‘대화를 위한 대화’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북한은 대화에 나오는 것 자체를 협상무기로 삼아 이런저런 일방적인 요구를 내걸어서는 곤란하다. 북한이 경제난이나 식량사정 악화, 아리랑 축전 준비 등을 대화에 나서는 계기로 삼는 것이야 충분히 파악되고도 남는 일이지만, 그것만을 대화의 궁극적 목표로 설정한다면 생명력 있고 지속적인 대화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새로이 일기 시작한 한반도 대화의 기운이 ‘제대로 된 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실체와 전략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공유하는 가운데 일관된 원칙에 따라 당당하게 나가는 자세가 긴요하다. 특히 우리 현 정부는 그 ‘원칙’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준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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