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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정] CIA 파일 까대면 오바마도 성치 않을 것이다
조선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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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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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난 정권을 단죄하고 씨를 말리는 나라는 생각보다 적다
대개 후진국에 속한다… 우리도 그중 하나다
 

선우정 사회부장
선우정 사회부장

그제 본지에 미국 대통령 사진이 실렸다. 전직 대통령 5명이 허리케인 피해자를 돕는 행사장에 모였다. 카터·부시·클린턴·부시(아들)·오바마. 셋은 민주당, 둘은 공화당이다. 사진엔 이런 설명이 있다. '적폐 청산이란 이름으로 전(前) 대통령을 넘어 전전(前前) 대통령을 수사하고, 이에 맞서 전전전(前前前) 대통령의 비리를 끄집어내는 한국 정치와는 상반된 모습이다.'

왜 이렇게 다를까. 미국 대통령은 훌륭하고 정의롭기 때문일까. 만약 미국이 나에게 사법의 칼을 쥐여준다면, 그리고 지금 한국식 잣대에 따라 심판할 수 있다면 이 미국 대통령 대부분을 탄핵 위기에 빠뜨리거나 감방에 몰아넣을 수 있다.

도덕(道德) 정치를 내세운 카터. 그는 우방 이란이 이슬람 급진파 손에 떨어진 것을 자연스러운 역사라고 여겼다. 한국이 북한에 잡아먹혔어도 정의라고 여겼을 인물이다. 물렁물렁하게 굴다가 이란 미 대사관이 급진파에게 털렸다. 인질 수십 명이 444일 동안 조리돌림당했다. 대선을 앞두고 서두른 구출 작전의 실패로 창창한 특공대원 8명이 희생됐다. 동생이 리비아의 구린 돈 22만달러를 꿀꺽한 건 문제도 아니다. 카터는 국민 생명권 보호 의무를 저버렸다. 한국식 잣대로 볼 때 그는 탄핵당해 마땅하다.

다음은 아버지 부시. 이란·콘트라 사건은 레이건 행정부가 적국 이란과 내통해 무기를 팔아먹은 사건이다. 의회 결정을 무시하고 뒷구멍으로 거래했다. 부시는 당시 부통령이었다. 레이건·부시 둘 다 가담했다는 증언이 있다. 헌정 질서를 짓밟은 국사범들이다. 탄핵은 물론 심판대에 세워야 마땅하다. 하지만 중령급 행동대장을 단죄하는 선에서 끝냈다. 레이건은 존경받았다. 지금 한반도 주변 바다를 누비는 핵(核) 항공모함도 그의 이름을 땄다. 부시는 아들까지 대통령을 만들었다. 한국식 잣대로 보면 탄식이 나온다. 이게 나라냐!

생존한 미국 전직 대통령 5명 전원이 허리케인 '어마'와 '하비'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텍사스와 루이지애나 및 미국령 푸에르토리코 이재민을 돕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사진은 지미 카터(왼쪽부터), 조지 H.W. 부시, 버락 오바마, 조지 W. 부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21일(현지 시각) 텍사스주 A&M대학 리드 아레나에서 열린 자선 음악회에 참석한 모습이다. 적폐 청산이란 이름으로 전(前) 대통령을 넘어 전전(前前) 대통령을 수사하고, 이에 맞서 전전전(前前前) 대통령의 비리를 다시 끄집어내는 한국 정치와는 상반된 모습이다. /AFP 연합 뉴스
다음은 클린턴. 이런 가정을 해보자. 한국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인턴 처녀와 ××하다가 들켰다면? 들통나자 자기가 한 행위는 ××가 아니라고 구질구질하게 변명했다면? 대통령의 청와대 ××를 상세히 묘사한 '19금(禁)'급 수사 보고서가 2000만명이 열람하는 세계적 대박을 쳤다면? 이런 클린턴에겐 '르윈스키 스캔들' 말고도 '지퍼(zipper) 게이트'란 성추문도 있었다. '게이트' 역사상 가장 너저분한 이름으로 꼽힌다. '화이트워터 사건'이란 불법 정치자금 문제로도 수사를 받았다. 그에 대한 미국의 단죄는 하원 탄핵까지 갔다. 하지만 상원 문턱은 넘지 않았다. 재선 임기를 꽉 채우고 퇴임한 클린턴은 세계를 돌면서 강연료를 쓸어 담는다. 한국식 잣대로 보면, 이건 정말 나라가 아니다.

아들 부시 때 일어난 '리크(leak) 게이트'는 내용이 무섭다. 부시는 이라크가 보유했다는 대량 살상 무기를 내세워 전쟁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 무기가 없었다. 없다는 사실을 보고했는데 부시 행정부가 뭉갰다는 증언도 나왔다. 전쟁은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부당한 전쟁을 만들어낸 전범(戰犯)으로 다뤄야 할 중대사 아닌가. 하지만 폭로 과정에서 CIA 요원 신분이 누설된 문제로 지루하게 논쟁하다가 대충 끝냈다. 취임 1년도 안 돼 러시아 스캔들에 휩싸인 현직 트럼프는 말할 것도 없다. 미국 국민은 뭐 하나? 워싱턴 광장에서 100만명이 촛불을 들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한국식 잣대로 그날 허리케인 구호 행사장에 나타날 자격이 있는 대통령은 오바마 정도다. 물론 두고 봐야 한다. CIA 파일을 까다 보면 오바마라고 비켜 나갈까.

미국은 이런 식이다. 워터게이트 역시 닉슨 사임으로 끝낼 문제가 아니었다. 물러난 대통령을 포승에 묶어 법의 심판대에 세워야 했다. 그게 한국식이다. 그런데 미국은 수사가 끝나기 전에 그를 사면했다. 워터게이트의 사법적 진실은 영영 밝혀지지 않았다. 이란·콘트라, 리크 게이트와 마찬가지로 행동 요원 몇 명 잡아넣고 끝냈다. 미국은 종종 정치적 해법이 사법적 해법을 앞선다. 사법의 칼날이 아무리 예리해도 정치가 연결한 봉제선을 뜯어내지 않는다. 흠집투성이 대통령이라도 살려내 국민 통합의 도구로 사용한다. 갈등이 피바람을 일으킨 남북전쟁을 겪었기 때문일까. 법의 테두리에 한정하기엔 미 대통령의 사명이 너무 크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게 선진국 정치일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의의 칼을 휘둘러 지난 정권을 단죄하고 상대 세력의 씨를 말리는 나라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걸 정의라고 생각하는 국민도 많지 않다. 독재 또는 내전 국가를 제외하면 아프리카와 남미, 동남아 몇 나라가 그 수준이다. 세계가 '후진국'으로 얕보는 나라들이다. 밖에서 보는 우리 수준도 그 정도일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0/24/20171024032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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