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의 北 공격 걱정하지만 실제 그리 빨리 전쟁 어려워
전쟁보다 당장 걱정해야 할 건 한국 정부 전쟁 반대 핑계 삼아
美가 대륙간탄도탄만 막고 南 공격할 북핵 묵인하는 것
 

권대열 정치부장
권대열 정치부장

추석 연휴 어딜 가나 "이러다 곧 전쟁 나는 거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지면 제작 과정에서 접한 많은 전문가 이야기는 한결같이 "전쟁까지는 아직 멀었다"는 것이었다. 어떤 전직 고위 안보 관계자는 "영(0) 퍼센트"라고도 했다.

요즘 회자되는 '전쟁'은 북한보다는 미국에 의한 전쟁이다. "두 항모 전단이 오는데 마음만 먹으면 때릴 수 있는 것 아니냐"고들 말한다.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미국이 9·11 이후 이라크를 공격할 때 항모 6척을 동원했다. 안보를 책임졌거나 지고 있는 전·현직 관계자들은 "북한 공격 작전 계획상 5척 항모 전단이 와야 한다"며 "2척으로는 감당이 안 된다"고 말했다. "크루즈미사일 154발 실은 핵잠수함도 오지 않느냐"고도 한다. 이라크전 당시 미 국방부는 "첫날에만 크루즈미사일 400발…"이라고 했다. 현재 한·미가 우선 타격 목표로 삼고 있는 북한 목표물만 750개 이상이다. 핵잠수함 한 대 추가로 될 일이 아니다. 9·11 이후 이라크 전쟁 개시까진 1년 6개월이 걸렸다. 이라크 남부 지휘 통제 센터를 무력시위 목적으로 폭격한 뒤부터 따져도 1년 4개월 뒤였다. 미사일 등 각종 무기·장비 생산도 필요했고, 미군 보호를 위한 각종 조치도 해야 했다. 국제적 명분을 쌓기 위해 각국을 설득하는 시간도 한참 걸렸다. 더구나 당시 이라크에는 미국인도 거의 없었고, 북한에 있어 중국과 같은 '보호국'도 없었다. 전문가들은 "진짜 전쟁 신호는 사드와 패트리엇 같은 미군 보호 장비들의 대규모 반입 같은 게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라크전 때는 그게 개전 2개월 전이었다.

오히려 외교·안보 국정 경험자들은 "지금 정말 걱정해야 할 것은 미국의 공격이 아니라 한국과 미국민들의 '전쟁 걱정'을 명분 삼아 미국이 북한 핵을 인정하고 자신들 걱정거리인 대륙간탄도미사일만 북한과 거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북한이 원하는 지점은 남한을 공격할 핵·미사일은 공인받고 미국과는 관계 개선을 시작하는 것이다. 반면 미국이 참을 수 없는 지점은 북한의 대륙간핵탄도탄 완성이다. 그래서 절충점으로 현 상태 동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이 상황은 우리로선 최악이다. 미국과 동맹은 약해지고, 북한은 우리 목줄을 쥐게 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각) 워싱턴 백악관에서 미국 외교계 거두인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을 만나고 있다. 이날 만남은 트럼프 대통령이 내달 한·중·일 3국 방문을 포함한 취임 후 첫 아시아 순방을 앞두고 북핵 해법 조언을 청취한 것이어서 향후 트럼프 정부의 노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AP 연합뉴스

실제 그리될 조짐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달 중국에서 시진핑 주석을 만난다. 여기서 북핵 문제의 큰 방향이 잡힐 가능성이 크다. 그걸 앞두고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위원장은 며칠 전 평양을 방문한 러시아 의원에게 "사거리 3000㎞ 탄도미사일은 이미 보유했다"면서도 "미국 본토 공격이 가능한 사거리 9000㎞ 미사일은 개발 중"이라고 했다. 미국 들으라는 얘기다. 트럼프도 엊그제 군사 행동 검토 회의를 하는 한편으로 키신저 전 국무장관을 만났다. 중국과의 빅딜론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고 한다. 트럼프는 '3000㎞까지 허용' 절충에 유혹을 느낄 것이다. 하물며 북핵 최대 피해자일 한국 정부가 "전쟁은 절대 안 된다"고 등까지 떠미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미국을 북핵 완전 제거에 집중하게 하려면 한국은 '전쟁 나더라도 북한이 포기할 때까지 압박해야 한다'는 자세는 보여야 한다. 미국이 '친구가 저렇게 절박한데 우리 생각만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그나마 운전대를 꺾지 않겠나. 북한 역시 그 정도는 돼야 '더 가는 건 위험할까' 하고 생각하기 시작할 거다. 지금 미국은 '전쟁 위험성을 높이는 건 절대 안 된다'는 한국 정부를 보며 '협상 측면에서도 진짜 도움 안 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협상력만 떨어뜨리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이를 근거로 나중에 미국은 '동결'에 합의해주고 '한국 원하는 대로 전쟁 않게 됐으니 북한 지원 비용은 한국이 다 내라'고 들이밀 수도 있다.

진보·좌파 일각에선 "그러다가 진짜 전쟁 나면 어떡하느냐. 국민 안전 때문에 그래선 안 된다"고 말한다. 나는 이 말에서 진정성이 영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 원하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 이런 '전쟁 걱정하는 척'을 하는 이가 더 많다고 본다. 물론 전문가들도 "긴장 고조 과정에서 우발적·국지적 충돌은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서울 등 인구 밀집 지역을 공격하는 건 자멸을 초래하는 것이어서 앞으로 50년 이 상 집권을 꿈꾸고 있을 김정은이 택할 선택은 되기 어렵다. 좌파 스스로도 늘 "북한은 전쟁 나는 순간 망하는 걸 알기 때문에 절대 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나. 어느 시점에는 진지하게 '전쟁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나라 전체가 고민해야 할 순간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은 "전쟁은 안 된다"며 필요 이상의 전쟁 걱정을 부추기는 걸 더 걱정할 때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0/11/201710110317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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