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얼마 전 오랜만에 동베를린에 갈 기회가 있었다. 물론 1990년 통일 이후 '동베를린'은 '동독'과 함께 사라졌으니 엄격히 말하면 동베를린이 아닌 베를린이었지만 말이다. 서독으로 흡수 통일된 지 얼마 후 처음 가보았던 동독. 당시 도시도, 자동차도, 사람도 모두 회색이었던 그곳. '서비스'라는 개념을 아직 모르던 식당 직원들이 우리 일행을 멀뚱멀뚱 쳐다보았던 게 기억난다. 하지만 2017년의 동베를린은 너무나도 달랐다. 화려한 건물과 세련된 사람들. 사회주의 프로파간다 대신 현대미술 작품으로 가득한 갤러리들. 과거 동베를린은 이제 통일 독일의 정치·경제·문화 중심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언제라도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었던 서독과 동독. 베를린 장벽을 넘다 총살당한 수많은 동베를린 시민들. 이제는 유명 관광지가 된 베를린 장벽을 보며 생각하게 된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도 싸웠을까? 무엇을 위해 나라를 감옥으로 만들고 어떤 추상적 이론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빼앗았던 것일까?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과거 정치 싸움만큼 무의미하고 우스꽝스러운 것이 없다고.

너무나도 부러웠고 화나기 시작했다. 2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은 통일했지만, 전범국 일본 대신 분단된 우리는 여전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개인이 원하는 삶을 살고, 정부를 비판하고, 세상을 마음껏 구경 나갈 수 있는 그런 '평범한' 북한을 말이다.

어쩌면 우리의 미래는 베를린의 현재가 아닌 과거와 더 가까울 수도 있겠다. 얼마 전 현대미술 갤러리로 탈바꿈한 동베를린 기차역 근처 '벙커'. 1943년 완성된 이 나치 방공호는 철골 콘크리트로 만든 3m 두께 지붕과 2m 가까운 벽을 자랑한다. 근처 3000명 주민들이 대피할 수 있었던 이 벙커는 얼마나 단단하게 지었는지 전쟁이 끝나고도 철거할 수 없었단다. 통일은 고사하고 북핵과 장사정포의 인질이 되어버린 한국. 왜 우리는 나치들마저도 자국민을 위해 준비한 이런 벙커 하나 짓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1989년 11월 동독 주민들이 붕괴된 베를린 장벽 사이를 지나 서독 영토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AP 뉴시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0/10/201710100333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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